날씨도 쌀쌀한데다 감기라도 걸릴세라 집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주말을 보냈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들이 있었지만 한주 연장하고서. 그러고 지금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에서 인용하자면 "독자에게 과거란 어떤 책을 읽지 않은 상태를 뜻하고, 미래란 어떤 책을 읽은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현재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상태다."(11쪽) 정확하게는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겠다. <데리다 평전>에서 <삶은 다른 곳에>까지 오늘도 십여 권의 책을 펼치고 덮었다. 그중 두어 권은 내일까지 완독하게 되리라. 곧 '읽은 상태'가 되리라.

 

 

아직 읽지 않은 상태이고 조만간 읽은 상태 모드로 바뀔 거 같지 않지만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되었기에 같이 묶었다.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동녘, 2014)과 자크 비데/제라르 뒤메닐의 <대안마르크스주의>(그린비, 2014)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알려졌지만 근년에 소개되는 책들로만 보자면 하비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창비, 2011)와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창비, 2012)에 이어서 <자본의 17가지 모순>까지 펴냈으니 말이다. 원제는 <자본주의의 17가지 모순과 종말>이다. 번역본의 부제는 '이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이라고 돼 있지만, 제목만 보자면 17가지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걸로 읽힌다. 소개는 이렇다.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이 시대의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전히 자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이 책을 통해 자본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자본의 작동이 우리 삶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많은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분석한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의 평을 빌리자면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인한 생활세계의 황폐화와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본의 동학’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본의 동학' 바깥에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런 책을 안 읽는 건 우리의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비데와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의 공저다. 자크 비데의 책은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새날, 1995)가 오래전에 소개된 바 있고, 제라르 뒤메닐은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저 <자본의 반격>(필맥, 2006),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2009), <신자유주의의 위기>(후마니타스, 2014)로 국내 독자들에겐 나름 친숙하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2007년작.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 동역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흐름을 분석하며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현대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 활동해 온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비데와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의 오랜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 구성된 작품이다.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각각 색다른 시선은 마르크스주의에 내재된 다채로운 맥락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생산관계나 계급들에 대한 명제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수정하고 재정식화하며,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한계와 공과(功過)를 분명히 한 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현대 사회의 변화 과정과 경제위기마다 나타났던 현상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오래된 이론처럼 느껴지는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현대 자본주의 비판의 주된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들이 드물지 않게 출간돼 있지만, 프랑스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견해니 만큼 참고해볼 만하다.  부제대로 '새로운 세계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에 눈뜨게 해줄지도 모른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란 말을 꺼낸 김에, 다다 마헤슈와라난다의 <자본주의를 넘어>(한살림, 2014)도 보탠다. <건강한 경제모델 프라우트가 온다>(물병자리, 2008)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됐던 책인데, 그 개정판이다. 원제가 <자본주의 이후>. 저자 마헤슈와라난다는 미국 출신의 출가 수행자로 인도의 철학자이자 경제사회 이론가인 P.R. 사카르의 계승자다. 사카르가 계발한 프라우트 모델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개발이 가능한 비전, 자급자족경제, 협동조합, 환경보존, 보편적인 영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모델"이라 한다.

 

마헤슈와라난다는 베네수엘라에 프라우트연구소를 설립하고 프라우트의 이론과 실천 방법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책은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 어떻게 바꿀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분명해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짚어 준다." 책에는 '점령하라!' 운동이 한창이던 시점에서 촘스키와 나눈 영상 대담도 수록돼 있는데,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점령하라 운동이 주는 또 하나의 효과는 작은 규모의 사회적 연대 체제, 상호부조, 협동, 협동조합 식당, 도서관, 건강 서비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총회 등을 동시에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것들이다. 이 운동이 가져다줄 잠재성을 생각해 보자면, 이러한 운동 전략이 성공한 이후에도 위와 같은 사람 간 연대와 같이하는 정신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게 되는 것이 잠재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너머'를 고심하는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일 성싶다...

 

1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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