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이번 주에는 국외 저자로만 세 명을 채웠다. 먼저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 에세이 <소소한 사건들>(포토넷, 2014)이 출간됐는데, <작은 사건들>(동문선, 2003)이라고 나왔던 책이다. 아마도 저작권이 옮겨간 듯.
1968-9년 모로코, 주로 탕해르와 라바트 그리고 남부에서 보고 들었던 장면들과 그 이후 평생을 함께 했던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직전인 1977-9년까지 파리에서의 저녁 모임들을 기록한 글에서 그는 스냅 사진 찍듯 인물과 풍경, 일상을 묘사한다. '남서부의 빛', '소소한 사건들', '팔라스 클럽에서 오늘 저녁…', '파리의 저녁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일기 형식으로 쓴 '파리의 저녁들'에서는 동성同姓에 이끌리는 비밀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존 책의 오역을 바로잡고 바르트의 문체를 최대한 살려 번역했으며, 책의 의미를 바르트의 작업 전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의 해설을 덧붙여 보다 면밀하게 바르트를 만날 수 있다.
더 나은 번역으로 바르트와 만날 수 있다고 하니까 기대해봄직하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동녘, 2013)도 더 얹어서 읽어봐도 좋겠다.
<자유죽음>(산책자, 2010)으로 처음 소개됐던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장 아메리의 책도 출간됐다. 에세이 <늙어감에 대하여>(돌베개, 2014). 1968년에 초판이 나왔으니까 <자유죽음>(1976)의 전작인데, 저자는 1977년에 4판 서문도 적었다. 그 이듬해 아메리는 자유죽음(자살)을 선택했다. <늙어감에 대하여> 같은 책의 제목이 가깝께 느껴진다는 게 그닥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순 없는데, 그럼에도 불가피하다. 부제대로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우리는 오래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그런 머뭇거림에 아메리의 성찰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늙어감의 불가피한 인간 실존과 운명을 도저하게 사유한다. 이 책이 질문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늙어감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아낸 주관적 현실’의 차원에서 다룬다.
세번째 저자는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알라딘에는 저자가 '브루스 링컨'으로 오기됐다). 우리에겐 <순수와 위험>(현대미학사, 1997)도 처음 소개되었는데, <자연 상징>은 그 속편 격이라고. 어떤 책인가.
현대 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이자 고전적인 저서로 평가받는 <자연 상징>은 에번스 프리처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클리퍼드 기어츠 등과 함께 현대의 가장 뛰어난 인류학자로 꼽히는 메리 더글러스의 대표작이다. 출판된 지 거의 50년이 되어가지만, 이 책은 몸의 사회적 의미부터 종교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지적 논쟁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분야를 앞서 보여준다. 더글러스는 원시사회, 고전 종교, 현대사회를 넘나드는 세련되면서도 강력한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우주론 탐구로 확장하며, 다양한 사회의 유형과 우주론의 관련성을 도식화한다. 이 책은 1960년대 말의 68혁명을 배경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당대의 혁명적 분위기를 진지하게 다룬다. 그러나 메리 더글러스는 지배하고 억압하는 의례와 상징을 파괴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통해서만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책에서 명료하고 역동적으로 표현된 격정적인 분석은 지금까지 서술된 인간 행위 연구 중 가장 풍부한 결실을 맺은 연구로 남아 있다.
제목은 밋밋하지만('자연 상징'이 떠올려주는 게 별로 없다) 인류학의 고전 가운데 하나라니까 욕심을 내보게 된다. <순수와 위험>도 어느 구석에 꽂혀(쌓여)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1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