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주례 행사처럼 겪는 일이 책과의 숨바꼭질이다. 강의나 필요 때문에 찾으면 며칠 전만 해도 보이던 책들이 마치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이 사라지고 없다. 흥분해봐야 스트레스만 더 받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마음을 다독이고 합리적인 추리까지 동원해보지만 끝내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실종도서'로 분류하는 수밖에). 그래도 당장 내일 강의에 쓸 책이라면 점심을 먹고 나서 2회전에 돌입해야 한다. 잠시 진정하는 동안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이미 주중에 낙점했기에 별다른 고민의 여지도 없다.

 

 

먼저 국문학자 천정환 교수의 묵직한 책으로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마음산책, 2014)이 출간됐다. 얼마전에는 데뷔작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14/2003) 개정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제목만으로는 가늠이 잘 안 되지만 '123편 잡지 창간사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란 부제가 어떤 성격의 책인지 요약해준다. 그 123편의 창간사도 수록돼 있기에 자료집으로 요긴한 책. "이 책은 1945~49년,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시대를 나누고, 각 시대 안에서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잡지들을 추려 그 창간사에 투영된 문화와 지성을 읽는다."

 

공저로 펴낸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 2013)과 보완적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한데,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책의 내용보다도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왔을까 하는 것이다. 두서없는 책더미 속에서 매주 허덕이는 경우라면 '학자'로선 자격 미달이겠다는 생각과 함께.

 

 

두번째는 러시아문학자 김수환 교수. 러시아 문화기호학의 거장 유리 로트만 전공자로 로트만 번역과 연구에 매진하면서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펴냈고, 이번에는 '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를 부제로 단 <책에 따라 살기>(문학과지성사, 2014)를 출간했다.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에 따라 살기'를 원했던 '러시아적 태도'의 매혹과 위험을 짚어낸다.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일 조차 낯설어하는 문화라면 '책에 따라 살기'는 정말로 남의 나라 일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성향이 '러시아적'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겠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책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담은 표지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영국 최고의 논픽션 작가로 평가받는다는 제프 다이어. 국내에는 세번째 번역된 책으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웅진지식하우스, 2014)가 출간됐다. 요가책이 아니라 여행책이다(서점에서는 또 요가책으로 분류해놓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가 부제. 여러 말을 늘어놓을 필요 없이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가 강력하다.

제프 다이어의 반문화 히피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는 점잖게 세계를 여행하는 나이 든 신사가 아닌 자유로운 힙스터이다. 흥미롭고 웃긴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에세이 중 내가 가장 자신 있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제프 다이어의 책으론 사진에 관한 책 <지속의 순간들>(사흘, 2013)과 재즈에 관한 책 <그러나 아름다운>(사흘, 2014/2013)이 먼저 나왔지만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여행에 관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기대하는 건 '한 방에 이르는 여정에 관한 영화에 관한 책' <조나>이다. "비전문가이면서도 그 어떤 작품보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진 에세이와 재즈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만을 텍스트로 삼은 에세이도 출간했다"는 저자 소개에서 <스토커>만을 텍스트로 삼은 바로 그 책이다. 제프 다이어와의 인연이 좀더 오래 지속될 듯싶다...

 

14.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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