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만 보자면 이주에 가장 눈에 띄는 책, 그래서 '이주의 발견'에 값할 만한 책은 고쿠분 고이치로의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한권의책, 2014)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 부제. 일단 제목이 허를 찌르는데, 알라딘에는 아직 안 뜨지만, 저자 소개를 찾아보니 이렇게 돼 있다.

 

 

저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1974년생.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카사키경제대학에서 준교수로 재직하며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주제는 스피노자를 비롯한 17세기 철학과 들뢰즈, 푸코, 데리다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현대 사상이지만, ‘즐겁고도 진지한’ 공부와 사회운동을 목표로 신문, 텔레비전, 잡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행동파 철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비교적 젊은 저자로 도쿄대 출신이라는 것과 프랑스 현대사상 전공이라는 게 눈에 띈다. 국내 소개되는 일본의 인문저자 상당수가 프랑스 현대철학 전공자인데, 그들이 일본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어서 그런 건지, 국내에서 유독 그런 저자들만 '발굴'하고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여하튼 그런 저자군 속에 고쿠분 고이치로도 위치시킬 수 있겠다. 어떤 책인가.

인간은 풍요로워지기 위해 애써왔다. 그 결과, 우리는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정말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철학자들이 고심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등의 철학적 논리를 차근차근 파헤치며 이러한 질문에 대답한다.

이런 주제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길을 연 철학자는 하이데거다(하이데거의 기분 분석을 떠올리게 하는데, 하이데거 전공자인 구연상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청계, 2002) 같은 책도 생각난다). 저자도 자연스레 많이 참조하고 있는 듯한데, 책소개의 마지막 대목도 하이데거에 대한 언급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의 깨달음을 몇 줄로 설명할 순 없지만, 파스칼의 지루함에서 시작하여 하이데거에까지 이르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뒤덮고 있는 ‘지루함’의 짙은 안개가 어떻게든 걷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아니, 지루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유롭다.”

아무튼 한가함/지루함에 대해서, 사실 요즘을 느껴볼 일이 드문 기분이지만,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해주는 흥미로운 책일 듯싶다. 개인적으로는 권태나 진화 같은 기분의 진화심리학적 기원에도 관심이 있는데(그것이 진화된 것인지, 만약 진화의 소산이라면 어떤 진화적 이익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진화의 오작동인지 등등) 그에 부합하는 책도 있다면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하품을 하기 시작했을까?..

 

14.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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