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 대신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기로 한다. 설명할 순 없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골라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더 쌀쌀해지기 전에, 라고 해야겠지만. 여하튼 날은 점점 쌀쌀해질 것이고, 어쩌면 첫눈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어느새 겨울과 맞닥뜨리게 되겠지. 인생의 사계도 그와 닮아갈 것이고. 11월은 그런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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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예술
짐작컨대, 다음주에 출간될 예정인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을 이달에 읽지 않을까. '김연수 산문'이 부제로 붙어 있는데, 산문을 쓰는 건 '소설가의 일'이 아니라 '소설가의 잡일'일 터이지만, 그런 잡일을 통해서만 소설가의 일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김영하의 <보다>(문학동네, 2014)도 표지가 같은 컨셉이로군. 황정은의 세번째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 2014)는 계속 (장편)소설을 써보겠습니다, 라는 결의까지도 담은 걸로 읽힌다. 표지가 배치의 기준이라면 세 권을 나란히 꽂아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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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새로운 시도로 'K-픽션' 시리즈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젊은 작가들의 대표 단편을 영어 번역과 같이 전재하는 시리즈다(해외 독자도 염두에 둔 시리즈이다). 1차분으로 다섯 권이 나왔는데, 박민규 <버핏과의 저녁 식사>, 박형서 <아르판>, 손보미 <애드벌룬>, 오한기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최민우 <이베리아의 전갈> 등이다. 필요 때문에라도 몇 권 읽어보려고 한다. 향후 진행 방향은 이렇다고 한다.
영어 번역에는 하버드 한국학 연구원 등 세계 각국의 한국 문학 전문 번역진들이 참여하였으며, 번역과 감수, 그리고 원 번역자의 최종 검토에 이르는 꼼꼼한 검수 작업을 통해 영어 번역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K-픽션은 아마존을 통해서 세계에 보급되며, 한국을 방문한 해외 유학생 및 단기 거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한국 단편 소설 읽기 강좌 및 스터디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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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쪽으론 이번에 인터뷰집 <쿠엔틴 타란티노>(마음산책, 2014)가 나온 김에 자미 버나드의 <쿠엔틴 타란티노>(나무이야기, 2008)까지 읽어보는 걸로. 아무래도 초기작인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이 그의 최고작이 아닌가 싶은데, 때문에 타란티노를 읽는 일은 자연스레 9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수반한다.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과 <펄프픽션>에서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의 커플 댄스(http://www.youtube.com/watch?v=WSLMN6g_Od4)는 얼마나 기발하고 멋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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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
이달의 인문서는 중국사 책으로 고른다.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둘째권으로 이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인 티모시 브룩의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너머북스, 2014)이 출간됐기 때문에. <청: 중국 최후의 제국>이 제일 먼저 나오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전체 여섯 권이라 앞으로 네 권이 더 남았다. 중국사, 하면 조너선 스펜스를 떠올리게 되지만 명대 전공자인 티모스 브룩의 책도 여럿 나와 있다. 명대 상업과 문화를 다룬 <쾌락의 혼돈>(이산, 2005), <능지처참>(너머북스, 2010) 등이 대표적. 원과 명을 함께 다룬 건 두 왕조 사이에 단절보다 연속성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관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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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쪽으로 분량이 있는 책들을 골랐기에 철학 분야는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쪽으로. '철학 스케치' 시리즈 가운데 <헤겔의 눈물>(열린책들, 2014)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오뒷세이아>(열린책들, 2014), 그리고 '그래픽 평전' 시리즈 가운데 <스피노자>(푸른지식, 2014)를 골랐다(헤겔과 스피노자에 대해선 두툼한 평전들이 나와 있는 상태라 여차하면 그쪽으로 넘어가도 되겠다). '스케치'와 '그래픽'이 컨셉인 만큼 너무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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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과학
오랜만에 법률 분야의 책들을 고른다. 권정임의 <노동법 사용설명서>(생각비행, 2014)가 눈에 띄어서인데, 일독의 의미도 있겠지만 매뉴얼인 만큼 구비해놓았다가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면 되겠다. 특히 직장인이나 예비 직장인이라면. 김선수 변호사의 노동변론기, <노동을 변호하다>(오월의봄, 2014)는 실제 사례집으로 읽어보면 좋겠고, 헌법학자 임지봉의 <법과 인권 이야기>(책세상, 2014)는 더 확장된 맥락에서 우리사회 법과 인권의 현실을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겠다. "인권 보장을 위해 오늘날과 같은 법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근대부터, 점점 더 많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꾸준히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법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국내외 주요 판례를 중심으로 살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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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에서는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의 신작 <탐욕경제>(알에치코리아, 2014)가 흥미를 끄는 책. '부의 분배 메커니즘으르 해부한다'가 부제다. '큰물'에서 노는 경제분석가의 세계 금융 예측서. 우석훈의 예측서로 <불황 10년>(새로운현재, 2014)도 같이 곁들이면 국내외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의 <빚으로 지은 집>(열린책들, 2014)은 대출로 집을 사라고 권하는 사회에서 가계 부채가 왜 위험한가를 실증적으로 경고하는 책.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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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
자연과학 분야는 생태학과 진화론 쪽의 책을 골랐다. 미국의 대표적 생태학자 배리 커머너의 대표작 <원은 닫혀야 한다>(이음, 2014).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현대 환경 위기를 다룬 고전이란 평가다.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을 처음 제기한 저자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진화론 교과서로 강추되는 케빈 랠런드와 길리언 브라운의 <센스 앤 넌센스>(동아시아, 2014)도 올해가 가기 전에 필독해볼 만한 책. 국내 학자의 책으론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바다출판사, 2014)을 더 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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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시 읽기
읽기/쓰기 분야에서는 청소년 고전을 골랐다. 꿈결 클래식 시리즈로 <데미안>과 <햄릿>에 이어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까지 나왔는데, 삽화와 자세한 주석, 그리고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서 청소년들이 처음 접하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특히 상세한 해설이 눈길을 끄는데, 청소년용이라고 해서 해설의 수준까지 평이한 건 아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수록된 해설은 그간의 다른 해설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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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온 고전들 가운데서는 유기환 교수가 옮긴 카뮈의 <이방인>(홍익출판사, 2014), 일러스트판으로 다시 나온 <최초의 인간>(미메시스, 2014)도 탐이 나는 책이고 헤세의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문학동네, 2014)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애독자들이 많은 작가들인 만큼 '장서용'의 의미도 갖겠다.
14.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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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1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문필가 키케로를 고른다. 그의 <투스쿨룸 대화>(아카넷, 2014)가 학술명저번역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는데, <최고선악론>(서광사, 1999)에 이어지는 것이면서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나남, 2012)에 앞서는 저작이라고. <투스쿨룸 대화>는 전체 5권으로 구성된 '철학적 대화편'. <최고선악론>과 함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최고선악론>이 '덕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는 명제를 다룬다면, <투스쿨룸 대화>는 '고통은 덕을 가진 사람에게서 행복을 앗아갈 수 없다'는 명제를 논의한다. 주제 자체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곧바로 떠올리게 하는데, 로마의 철학자는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궁금하다. 궁금하다면 읽어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