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대작이 없는 가운데(그래도 따로 언급할 만한 책은 몇 권 되지만) 이번주에 가장 관심을 끄는 책은, 그래서 '이주의 발견'이라고 더 꼽아도 좋을 만한 책은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의 <소설이 필요할 때>(알에이치코리아, 2014)다. 처음 소개되는 저자들은 생소하지만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라는 문구가 모든 걸 요약해준다(소설치료사!). 소개는 이렇다.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에서 2008년부터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듯이, 문학치료사인 이들은 소설을 처방한다. 「인디펜던트」에서 책 추천 코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의뢰인들에게 일대일로 소설을 처방하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영문과 시절부터 소문난 독서가이자 절묘한 책 추천의 달인이던 두 저자는 졸업 후 문학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들이 오랜 문학치료사 활동을 집대성하며 펴낸 <소설이 필요할 때>는 세계문학상 수상작부터 베스트셀러, 제3세계문학, 숨어있는 명작에 이르는 751권의 다양한 소설 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 처방전이자, 책의 홍수 속에서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처방전이면서 '세상 모든 증상에 대한 소설치료법 A to Z'이라는 구성이 말해주듯 '의학편람'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들이 제시한 처방전을 들고 찾아야 할 곳은 약국이 아니라 서점이라는 것이 여느 처방전과의 차이점(생각해보니 저자들이 처방한 책을 다 구비하고 있는 도서관-약국도 구상해볼 수 있겠다). 두 치료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이든 우리의 처방은 단순하다. 소설 한 권(혹은 두 권)을 규칙적으로 읽을 것. 어떤 증상은 소설치료로 완쾌될 것이고 어떤 증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위안받는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어떤 소설을 처방받는 문학의 힘을 통해 잠시 현실을 잊고 다른 사람이 되어봄으로써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될 것이다. 때로는 오디오북을 듣거나 친구와 소설을 낭독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법일 수도 잇다. 모든 치료책을 다 읽고 치료과정을 마치면 결과는 늘 최상일 것이다.(...) 우리가 알려준 소설 반창고와 습포제로 즐거움을 얻기 바란다. 이런 치료로 당신은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현명해질 것이다.
여하튼 '실용서'이니 만큼 책의 가치, 혹은 처방의 유효성은 독자-환자들의 경험을 통해 입증될 수 있을 터이다. 처방된 책이 국내에 다 번역돼 있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구할 수 있는 책 가운데 테스트해볼 수 있는 걸로는 화날 때 -> <노인과 바다>, 실존적 분노를 느낄 때 -> <싯다르타>, 불안할 때 -> <여인의 초상> 등이 있다. 그런 증상이 있을 때 한번 시도해보시길.
더불어 팁으로는 '독서 질환'에 대한 처방도 있는데, '강박적으로 책을 사들일 때'가 해당되는 듯싶어서(이 책도 아침에 주문해서 오후에 받았다) 참고하니 전자책 리더기 혹은 '지금 읽는 중' 선반을 마련하란다. '지금 읽는 중' 선반에 여섯 권 가량 꽂아두고 이 중 빈자리가 나야지만 새 책을 사도록 규칙을 정하라는 것. 4개월 넘게 선반에 남아있다면 선물하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라는 충고도 곁들인다. 흠, 듣고보니 꽤 '실용적'일 것 같긴 하다...
14. 11.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