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시스템 점검을 하는지 도서 정보가 제대로 뜨지 않아 불편한 대로 '이주의 고전'을 골라놓는다.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의 <해체신서>(한길사, 2014). 서양 근대해부학을 일본에, 그리고 동아시아에 처음 소개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궁금하던 차에 마침 번역돼 나온 것. 알라딘에는 아무런 책 소개가 없어서 교수신문의 리뷰(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9686)에서 일부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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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신서>는 원래 독일의 쿨무스(1685~1745)가 1722년 펴낸 <해부도표>의 네덜란드어 출판본을 스기타 겐파쿠 등이 일본어(한문)로 다시 번역해 1774년에 출간한 해부서다. 쿨무스의 책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출간됐는데, 설명과 도판이 해부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집약적으로 배치됐기 때문에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성수 서울대 교수(한국의학사)에 의하면, <해체신서>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서양 근대 해부학이 동아시아에 널리 소개됐을 뿐 아니라, 특히 일본으로서는 번역을 통해 서양의 학문을 대규모로 받아들이는 한 시대의 문화적 태도, 즉 난학이라 불리는 학문적 풍토가 다져지게 됐다.
이미 전반적인 소개는 이종각의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서해문집, 2013)를 참고할 수 있다. 타이먼 스크리치의 <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도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을 주제로 한 책. 서양 해부학의 수용을 계기로 일본 근대화의 바탕이 마련되었다면, 당시 조선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역시나 교수신문에서 발췌한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의 조선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부를 조선에서 살았던 李圭景(1788~?)은 전60권에 이르는 백과전서적인 <五洲衍文長箋散稿>를 저술한 지식인이다. 그는 인간의 몸, 신체의 형태와 기능 그리고 작동하는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그는 성리학적 학문방법인 격물과 궁리의 시작은 天理가 아니라 내 몸이며, 거대담론보다 내 몸에 대해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하늘이나 하늘의 법칙과 따로 떼어내 상정하지 않는 이상, 이것만으로는 근대적 학문방법과 통한다고 보기 어렵다.
옮긴이에 의하면, 무엇보다 이규경이 지녔던 명백한 한계는 그가 볼 수 있었던 서양의 서적이, 한역된 洋書인 탕약망(Adam Schall)의 <주제군징>으로 한정된다는 사실이었다. 갈레노스로 대표되는 서양 중세의 의학론을 담고 있는 <주제군징>은 이미 시간이 무척이나 지난 과거의 지식만을 제공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의학·천문·군사 등의 기술학 관련서적을 원전으로 보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상관에서 일하는 역관이 서양학문의 전수를 주도했다. <해체신서>야말로 서양의학서를 원전으로 접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한 주요 사례였다. 최신의 서양학문을 자국어로 번역해 수용하는 것은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시도였다.
여하튼 근대와 근대화의 기원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한번쯤 씨름해봐야 하는 주제이고 책이다. 개인적인 궁금증. 근대 학문의 표본이 해부학이었다면, 소위 탈근대 학문의 모델은 무엇일까. 무엇이 근대 이후로 우리를 데려가는가. 혹은 몰고 가는가?..
14. 10.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