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도 강의가 있기 때문에 편안한 '불금'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짬을 내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돈의 물리학>(비즈니스맵, 2014)이란 말도 안 되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어서다.

 

 

'돈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다'가 부제라면 고단수 유머 같기도 한데('도를 아십니까?'를 연상시키지 않는지?), 저자 제임스 오언 웨더롤의 이력이 유머스럽진 않다. 무려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 이후 7년 만에 하버드 대학, 스티븐스 공과대학, UC 어바인에서 물리학, 수학,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 20대의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어디나면,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과학 논리 및 철학 교수다. 약장사는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차세대 지성 제임스 웨더롤 교수가 금융과 물리학 사이의 은밀한 역사를 밝히며, 새로운 차원의 지식융합 경제학을 선보인다"는 소개에도 흥미를 갖게 된다. 새로운 차원의 지식융합 경제학? 어떤 책인가.

물리학자인 나는 물리학을 이용해 시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 주장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일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물리학과 금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그 개념이 어떻게 해서 금융계에 뿌리를 내렸고, 어떻게 물리학자들이 월스트리트의 주역이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밝혀낸 이야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올 무렵의 파리에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정부 연구소들, 라스베이거스의 블랙잭 테이블, 태평양 연안의 이피Yippie공동체로 이어진다. 물리학과 현대 금융(그리고 더 넓게는 경제) 이론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깊다. 

그러니까 금융물리학을 새롭게 고안한 것이 아니라 그런 관심을 가졌던 물리학자들을 추적한 이야기라는 것. 그게 '지식융합 경제학'에까지 도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야기 자체는 흥미를 끌 만하다(저자의 후속작이 <월스트리트의 물리학>인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고 적었는데, 제목만 다르고 <돈의 물리학>과 같은 책이라 한다).

이야기는 20세기 초의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대부>와 프랭크 시나트라 시절의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오늘날의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경쾌하게 흘러간다. 한 지구과학자는 지진을 예측하는 모형을 사용해 주가 대폭락을 예측했다. 어떤 물리학자는 양자론을 활용해 더 정확한 소비자 물가 지수를 얻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또 다른 이는 입자물리학 이론으로 인플레이션을 계산했다. 위대한 학자들과 천재들의 기발한 아이디어, 시장을 분석하는 모형과 개념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금융과 물리학의 은밀한 역사, 시장의 광기에 도전하는 숨 막히는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금융 혁신이 가져올 예상치 못한 결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하다.  

 

직접 관계는 없지만 <돈의 물리학>이라고 하니까 프리초프 카프라도 떠올리게 된다. 돈이 아니라 도에 관심을 가졌던 물리학자! 국내에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범양사, 2006)이라는 밋밋한 제목으로 번역됐지만 그의 대표작의 원제가 <물리학의 도>였다. 신과학의 시발점이 됐던 책. 지금은 믿거나 말거나 과학이 된 듯싶지만. 이야말로 '도를 아십니까?'에 견줄 만한 책이 아니었던가.

 

 

생각난 김에 일반적으로 물리학도들은 무슨 책을 읽나 찾아봤다. 하긴 물리학도가 아니더라도 이과 전공학생들은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D. 핼리데이의 <일반물리학>이 많이 읽히는 걸로 뜨는데, 보통은 원서를 구입해서 읽을 듯하다. 나로선 거기까지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고 미치오 가쿠의 <미래의 물리학>(김영사, 2012)이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구입도서인데, 역시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14.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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