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일정에 쫓기다 보니 잠자는 시간도 대중이 없어졌다. 졸음이 쏟아지다가 말똥말똥해지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는데, 잠이 달아난 김에 페이퍼도 하나 적는다. 철학 관련서들 얘기다.
먼저, 볼프강 뢰드의 <유레카, 철학의 발견>(은행나무, 2014). 국내엔 처음 소개되는 저자인데 독일 인스부르크대학 철학과 정교수직에서 은퇴하고 한 철학사 시리즈의 발행인 겸 저자로 활동중이라 한다. 은퇴한 철학교수가 쓴 '철학 입문서'라고 할까. "이 책은 전문지식을 갖추지 않았지만 철학의 물음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철학답사"라는 게 저자 자신의 소개다. 원제도 <유레카!>. 초점을 일화들을 통한 소개에 있는 듯싶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화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살펴보는 <유레카, 철학의 발견>이 출간되었다. 칸트와 데카르트를 비롯하여 17세기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던 볼프강 뢰드는 철학의 물음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일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다양한 철학 분야와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제는 '처음 시작하는 철학'이다. 철학 입문서야 적잖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나오는가, 란 의문을 잠시 품었다가 바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해마다 '학생들'이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매년 초등학교 1학년이 생기고, 대학 신입생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철학 입문>도 새로운 관심과 분위기에 맞게 업그레이드되거나 최소한 '새로운 척'해야 하는 것.
다케다 세이지와 현상학연구회가 같이 지은이로 올라와 있는 <처음 시작하는 철학 공부>(컬처그라퍼, 2014)도 마찬가지 용도의 책이다.
철학사상의 '핵심과 흐름'을 짚어 주는 가장 쉬운 철학 입문서.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이 시대 순으로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철학사 책은 아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내키는 부분부터 읽어도 좋다. 다만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가다 보면 지금까지 철학이 어떻게 훌륭한 원리를 축적해 왔는지, 그 연관성을 쉽게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어떤 책이건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흥미와 관심을 일깨워주고 뒤이어 읽을 책이 무엇인지 정도만 안내해준다면 입문서로서는 제 몫을 다한 것이다.
또 다른 관련서는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필로소픽, 2014)이다. 처음 나온 책은 아니고 동명의 책으론 알랭 드 보통과 움베르토 에코의 책도 나와 있지만, 이 제목의 원조는 보에티우스다. 그간에 몇 종이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매력적인 판본이 없었는데, 이번에 나온 건 '라틴어 원전을 충실하게 완역한 탁월한 정본'이라고 자평하는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쇠망사>에서 플라톤이나 키케로에 못지않다고 평가하며 찬사를 보내고, 중세에 프랑스어로만 거의 1천 편 가까이 번역이 나올 정도로 <철학의 위안>은 서양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나, 서양 고전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한 번역서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역자는 가장 권위 있는 판본인 이탈리아어 주석서와 영어 주석서, 기존의 우리말 번역을 참고하여 라틴어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때문에 설사 기존 번역본을 갖고 있거나 읽은 독자라도 한번 더 읽어봄직하다. 품위 있게 나온 책의 장정도 마음에 든다...
14. 0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