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늦은 건지, 빠른 건지 헷갈리는 대로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드물게도 국내 작가/시인으로만 세 명이다. 먼저, 이제는 바다, 하면 떠올리게 되는 작가 한창훈의 <자산어보> 두 권이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와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

 

 

순서는 그렇게 적었지만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2010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니 핵심은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라고 해야겠다. 알라딘 마을에선 뉴스라고도 할 수 없지만, 과문한 방문자를 위한 소개를 옮기면,

전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에서 바다가 차려주는 먹을거리 묘사로 독자들의 침샘을 터뜨렸던 작가 한창훈이, <자산어보>의 원저자 정약전이 1814년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써낸 지 꼭 200주년이 되는 2014년, 한창훈의 자산어보 2탄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완성해 돌아왔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라면서 그가 책 속에 푸지게 차려낸 것은 '오직 바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상'이다. 그의 바다에선 여전히 보리멸, 숭어, 참치, 쥐치, 상괭이, 고래 들이 뛰놀고, 어딘가 '거시기하게 생긴' 전복도 요염하게 움찔거린다. 하지만 이번 자산어보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생명체는 무엇보다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밥상이건, 술상이건, 작가 한창훈, 하면 오랫동안 떠올릴 책이라는 예감이 든다.

 

 

작가 이기호의 장편소설도 나왔다.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 2014). 작년에 나온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 2013)에 뒤이은 것으로, 장편소설로는 <사과는 잘해요>(민음사, 2014)에 이어서 두번째다. 더불어 '죄 3부작'의 두번째 작품. "소설은 얼떨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고 만 '나복만'의 삶을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광기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과 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마지막 종결편은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다.

 

추천사를 쓴 신형철 평론가는 "이런 무거운 소재 앞에서도 '이야기꾼'의 어조와 호흡을 절묘하게 운용하면서 시종 ‘희비극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기호 소설의 특징이다. 작가라면 비극적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게 웃어야(웃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윤리적 준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이 소설을 끝까지 웃으면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후반부의 착잡한 진실 앞에서는 견디기 힘든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끝으로 김이듬 시인의 시집. 신간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가 출간됐다. 김이듬이 중요한 시인이라는 정보를 수년 전에 제공해준 조재룡 교수가 해설을 썼다. "피를 동시에 철철 흘리는 온몸의 마임'을 보여주며 한국 시단에서 유일무이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김이듬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자세히 보니 '문지'에서 나온 시집 외에 네번째 시집으로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이 작년에 나왔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 작가로 선정되어 반년 가까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체류하며 쓴 시편들"이라고. 그리고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 2007)보다 먼저 나왔던 데뷔시집은 <별 모양의 얼룩>(천년의시작, 2005). 게다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문학동네, 2011)까지 펴낸 바 있다. 어떤 시를 쓰는가.

 

내 마음의 기생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밤 강가에 머물며 영감(靈感)을 뫼실까 하는 이 심정은
영혼이라도 팔아 시 한 줄 얻고 싶은 이 퇴폐를 어찌할까
밤마다 칼춤을 추는 나의 유흥은 어느 별에 박힌 유전자인가
나는 사채 이자에 묶인 육체파 창녀하고 다를 바 없다

 

자신을 '시골 창녀'에 비유하는 건 아주 새롭지 않지만, '육체파 창녀'라는 표현은 눈에 띈다(물론 유머일 테지만, '정신파 창녀'도 있나 싶어서다). 늦여름의 시간이 단조롭게 여겨진다면, 꽤나 눈 밝은 평론가들이 우리 시대의 시적 상상력으로 '강추'하고 있는 시세계로 한발 들여놓아도 좋겠다...  

 

14.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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