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를린의 아침, 마지막 아침이다. 오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에. 마지막 일거리로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문학동네, 2010)을 다룬 것으로 출국일 아침에 써보낸 원고였다. 시간이 나면 공항 구내서점에서 요사의 작품도 있나 찾아봐야겠다...

 

 

한겨레(14. 08. 18) “오르가슴이 뭐예요, 아빠?”

 

“생일 축하해요, 새엄마! 돈이 없어서 선물은 준비 못 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등 할게요. 그게 내 선물이 될 거예요.” 마흔 번째 생일날 루크레시아는 침대맡에서 의붓아들 알폰소가 손으로 조심스레 눌러쓴 편지를 발견하고 감동한다. 남편 리고베르토의 어린 아들이 재혼에 장애가 될 거라고 염려했던 터라 기쁨은 두 배다. ‘내가 이겼어. 저 아이는 이제 날 사랑하고 있어.’ 남미의 대표 작가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은 그렇게 시작한다. 어떤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을까?

 

요사는 매우 짓궂은 결말을 선택한다. 알폰소의 ‘찬양’이 비난으로 바뀐 건 아니다. 다만 너무 에로틱한 찬양이란 게 문제다. 결말에 이르러 알폰소는 못된 개구쟁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새엄마에게 들은 말의 의미를 아버지한테 묻는다. “아주 근사한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말이다. 리고베르토의 손에서 위스키 잔이 떨어진 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는 아이가 이야기를 꾸며댄다고 의심하지만 알폰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다. 이를 입증하려는 듯이 작문 과제로 쓴 글을 보여준다. ‘새엄마 찬양’이 제목이고, 알폰소는 새엄마 루크레시아와의 에로틱한 관계를 모두 적어놓았다. 아들의 글을 읽은 리고베르토는 행복에 대한 모든 환상이 비누 거품처럼 한순간에 꺼져버리는 걸 느낀다.

 

리고베르토는 어떤 환상을 가졌던가. 보험회사 관리자인 그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 사는 중산층 가장이다. ‘평범한 무명인’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지만 그에겐 비밀이 있었다. 남들과 다르게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는 비밀이다. 그는 밤마다 루크레시아와 최고의 쾌락을 맛보았으니 그 행복감에는 근거가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몸을 철저하게 미학적으로 통제했다. 밤마다 완벽한 배변을 통해서 육체를 정화하고, 요일마다 신체의 한 부위를 정해서 세심하고 철저하게 닦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각 기관과 부위에 하루씩 공을 들임으로써 그는 신체를 전체적으로 보살피는 데 있어 완전한 공평성을 보장했다.” 그의 말로는 ‘공평한 사회’라는 불가능성을 현실화한 게 그의 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리고베르토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하지만 모든 집단적 이상은 불가능한 꿈이며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패배로 끝날 전쟁에 나서는 건 시간 낭비이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대신에 그는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그런 이상이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에로티시즘의 실천과 함께 몸을 닦는 세정식이나 야간 배변 등을 통해서 그는 매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완벽함에 이르고자 한다. 침대가 그의 왕국이었으며 아내의 팔과 다리 사이에서 그는 군주처럼 군림했다. 심지어 자신을 신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리고베르토의 환상은 그렇게 충족되는 듯 보였다. 그의 아들이 “오르가슴이 뭐예요, 아빠?”라고 질문하기 전까지는.

 

아들 알폰소의 ‘새엄마 찬양’ 이후에 리고베르토의 행복은 무너진다. 그는 자신의 여신이자 왕비였던 루크레시아를 내쫓았고 신심이 독실한 체하는 위선자로 급속하게 늙어간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알폰소를 하녀는 비난하지만, 알폰소는 ‘마치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장난을 하는 것처럼’ 진정한 기쁨으로 가득한 웃음을 짓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중산층 부르주아에 대한 짓궂은 풍자를 끝내면서 바르가스 요사가 지었을 법한 웃음이다.

 

14. 08. 18.

 

 

P.S. 바르가스 요사는 리고베르토 집안의 이야기를 몇편 더 썼다.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새물결, 2004)와 <나쁜 소녀의 짓궂음>(문학동네, 2011) 등이 '리고베르토 사이클'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새엄마 찬양>을 읽어본 독자라면 손에 들지 않을 수 없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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