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59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앤드루 스마트의 <뇌의 배신>(미디어윌, 2014)을 다뤘다. 뇌과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유익한 시사점도 던져주는 책이다. 관련서로 더 깊이 읽어볼 만한 책에는 승현준의 <커넥톰, 뇌의 지도>(김영사, 2014), '카이스트 명강' 시리즈의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사이언스북스, 2014) 등이 있다.

 

 

시사IN(14. 08. 02) 겨우 그만큼 자고 우리, 괜찮을까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잠이 부족한 국가'다. 2012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7시간49분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수치는 18개 조사 국가 가운데 꼴찌라고 한다. 이 평균을 놓고 대부분의 일상과 비교해 ‘그렇게나 많이 자나?’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일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대로 떨어지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잠을 자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긴 근무시간 때문이며, 자타공인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일중독 국가’다. 하지만 자랑스러울 건 없다. <파이낸셜타임스>가 꼬집은 대로 “노동생산성은 OECD 전체 평균의 66%에 머문 것으로 나타나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효과 없이 일만 많이 하는 셈이다.


두 가지 반응을 예상해볼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체념적 태도가 하나. 그렇게라도 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저효율 장시간 노동 체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태도. 뭔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필히 참고해볼 만한 책이 있다. 앤드루 스마트의 <뇌의 배신>(미디어윌)이다. ‘배신’ 시리즈가 유행하기도 해서 제목은 그렇게 붙었지만, 원제는 ‘자동항법장치’를 가리키는 ‘오토파일럿’이다.


인간의 두뇌에도 오토파일럿 같은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 일단 책의 전제다. 우리가 ‘휴식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두뇌는 ‘수동 제어’ 모드에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전환된다는 것. 항공기 조종사는 비행의 모든 과정을 수동으로 조작해야 할 경우 곧바로 위험한 수준의 피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륙과 착륙 같은 위험 구간에 정신을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이러한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오토파일럿이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는 격렬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진화했지만,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의할 것은 조종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오토파일럿이 대신 일하는 것처럼 우리가 활동을 쉬는 동안에도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두뇌는 전체 몸무게의 2퍼센트에 불과한 기관이지만 신체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비한다. 아무 일 하지 않을 때도 산소를 운반하는 피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로 몰리며 두뇌 대사물질을 더 많이 소비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업무에 몰두하고 있을 때보다 멍하게 앉아 있을 때, 신경과학의 표현으로는 ‘무자극 사고에 빠져 있을 때’ 오토파일럿으로서의 두뇌는 더 바쁘다.


두뇌는 안정성과 유연성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자아’로 인식해야 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이 자아 유지에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뇌를 단지 정보처리 기관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 기능이 중요한 만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 수준을 최적화하는 것이 두뇌 건강뿐 아니라 일의 능률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베개를 베고 누워서 푹 쉬면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낙서를 끼적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좋은 삶의 전제조건이라는 게 신경과학자인 저자의 메시지다. 방학을 맞이해도 빡빡한 일정에 치여 있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염려된다면 저자의 주장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훗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자유로운 형식의 몽상, 목적 없는 놀이, 생각 없이 즐거워하는 경험으로 채워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 삶의 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한가한 휴식과 결근과 태만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누가 반대할까!

 

14. 07. 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