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도 국내 저자들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시인/작가들로만 고르는 건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에세이의 세 저자다.

 

 

 

먼저, 이문재 시인의 시집이 오랜만에 나왔다.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제국호텔>(문학동네, 2004) 이후 10년만에 펴낸 다섯 번째 시집이라고.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 1988; 문학동네, 2004)으로부터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인지. 당연히 세상의 많은 풍경이 바뀌었고, 시인의 생각도 변화해왔다. 이렇게 적었다.

10년 만에 묶는다. 네번째 시집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왔다.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었다. 맨 앞이란 자각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고 감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우리들 각자가 맨앞이라는 '세계감'을 회복하고 단련하는 계기로 삼아봄직하다.  

 

 

 

소설가 전경린의 네번째 소설집도 나왔다. <천사는 여기에 머문다>(문학동네, 2014). "<물의 정거장> 이후 11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단단히 써낸 9편의 단편이 담겨 있는 이 소설집은 가히 전경린 문학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는 소개다. 흠, 작품이야 꾸준히 발표해왔을 터이지만, 작품집으로 작가를 만나려는 독자들은 숨 넘어가겠다.

 

문학동네의 한국문학전집에는 두번째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문학동네, 2014)이 꼽혔다. 1999년작. "사랑이란 열망하면 할수록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근본적으로 불온한 정열임을 그려내 보이는 한편, 불온한 욕망, 모호한 생의 불안으로부터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전경린 문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문제작"이라는 평가다. 처음 만나는 독자들이 손에 들어봄직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이응준의 에세이도 출간됐다.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반비, 2014)라는 긴 제목의 책이 '이응준의 문장전선' 첫 권으로 나왔다. 계속 이어진다는 얘기인데, <인간과 신에 대한 동물의 견해>가 2권으로 예고돼 있다. 이 시리즈의 취지는 이렇게 소개된다.

이 책은 문화전체주의와 문화상업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비평 논픽션 시리즈 문장전선의 첫 번째 권이기도 하다. 분단 내지 통일은 우리 사회와 삶에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또 그에 대한 발언이 깊은 성찰보다는 성급한 편가르기로 흡수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 한국 문화가 당면하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이 무엇인지 역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념적 선명성을 강요하며 정말로 근본적인(radical) 성찰이나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세태와 문화전체주의는 같은 토양에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장전선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렇게 한국 사회의 중요하지만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문제들을 골라 근본적으로 성찰함으로써, 편리하고 익숙한 정답을 거부하는 독자들을 호명하고자 한다.

첫 주제가 통일이 된 것은 작가가 '21세기 <광장>'이라고 부른 <국가의 사생활>(민음사, 2009)이 계기가 됐다. 연애소설에 장기를 보인 작가가 통일소설도 쓴 경우로는 유례가 드물지 않나 싶다. 더불어 작가의 고백에 따르면 통일 이후의 상황을 다룬 가상소설로서 <국가의 사생활>은 작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문장전선'으로까지 이어진! 책의 부록으로는 탈북자 출신의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14.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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