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이본 셰라트의 <히틀러의 철학자들>(여름언덕, 2014)을 고른다.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돌베개, 2014)에 이어서 히틀러 관련서가 또 나온 셈인데, 한두 권 더 나온다면 '붐'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 학자로 보이는데, <히틀러의 철학자들> 외에 <아도르노의 긍정 변증법>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인종주의, 국수주의, 대량학살에 대한 무관심. 이런 태도는 세상이 철학자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철학자들이 수준 높은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히틀러와 동시대를 살았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같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노골적으로 나치를 옹호했을 뿐 아니라 반대자 탄압, 유대인 대학살,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온갖 구실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그런 환상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만다. 나아가 칸트, 쇼펜하우어, 헤겔, 포이어바흐, 니체 같은 그 이전 세대의 걸출한 철학자들이 개인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곡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발언으로 히틀러와 나치의 인종 청소 정책에 중요한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오용과 남용의 책임까지 철학자들에게 물릴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한데(발언의 거두절미한 인용이 대표적이다), 정통적인 철학서를 저술한 경력의 저자이기에 입바른 소리 이상의 근거를 갖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히틀러와 철학자들'이란 문제는 기본적으로 '하이데거나 나치즘'이란 문제의 재탕이자 확장으로 보인다. 업그레이드된 내용이 있을지 궁금하다...
14. 0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