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27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 5월임을 염두에 두고 고른 키워드가 '결혼'이었는데, 앨런 맥팔레인의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나남, 2014)이 출간된 걸 계기로 관련서를 더 골라보았다. 결혼의 간략한 역사이면서 삐딱한 역사라고 할 수잔 스콰이어의 < I don't>(뿌리와이파리, 2009)부터 시작하는 걸로 잡았다.

 

 

 

책&(14년 5월호)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오월의 신부’가 되는 것은 많은 미혼 여성들이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달콤한 꿈으로만 채워질 수 없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도 각자가 결혼의 손익에 대해서, 즉 결혼의 비용과 혜택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볼지도 모른다. 거슬러 올라가면 결혼의 역사 또한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굉장히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결혼의 역사를 이끌어온 동인과 쟁점은 무엇인지 몇 권의 책을 통해 짤막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은 책은 수잔 스콰이어의 < I don’t>(뿌리와이파리, 2009)다. 제목의 ‘아뇨!(I don’t)’는 결혼서약에서 “이브, 그대는 이 남자 아담을 당신의 합법적인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라는 주례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통상 ‘예(I do!)’라고 대답함으로써 신랑과 신부의 자발적인 동의하에 결혼이 이루어졌다고 선포되지만, ‘아뇨!’라고 답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저자가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결혼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제목을 내건 것은 결혼의 역사를 16세기까지만 다루기 때문이다. 16세기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사랑을 중시하는 결혼관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기다. 반면에 그 이전의 역사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잔혹사였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창세기의 구절부터가 좀 불길했다.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기독교적 전통에 따르면 여성은 철저한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가부장제 결혼과 정절에 대한 남성 편의적 이중 잣대, 그리고 여자를 집에 가둬놓기 등이 서양사를 관통해온 남자들의 여성 통제 전략이었다. 이러한 결혼관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루터와 프로테스탄트는 동지애를 가장 우선시하고 자녀출산과 정절이 그 뒤를 잇게 함으로써 결혼의 의미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고대세계에서 2000년대까지 서술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메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책과함께, 2012)에서도 16세기는 전환점으로 간주된다.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는 결혼관은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돼 17세기 청교도들이 이주하면서 미국으로 전파됐고 18세기 후반에는 중류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의 감정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우리도 사정이 다르지 않지만 근대 이전에는 아내는 성적 즐거움, 자식, 양육, 요리, 가사 노동을 제공해야 했고 남편에게 신체를 학대를 받지 않으면 축복이라고 여겼다.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하고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때려도 좋다는 낡은 믿음은 부부가 서로를 동반자로 여기는 결혼 형태가 확산되면서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19세기 이후로 여성의 교육과 취업 기회가 많아지고, 더불어 사회적‧정치적 참여가 빈번해지면서 남편과 아내는 좀더 평등한 관계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예기치 않은 진전을 가져온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대공황기만 하더라도 남자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던 ‘일하는 아내’가 거꾸로 칭송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 전에는 미혼의 젊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독점했지만 전후에는 기혼자와 중년 여성이 태반을 차지했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아내는 남편의 예속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많은 부부는 권리와 권위를 서로 공유한다. 아니 변화는 더 급속하다. 성별에 관계없는 시민결합이 결혼의 한 형태로 인정받기까지 하니까. 


지금도 결혼식장에서 통용되는 의례는 1552년 영국 국교회의 기도서를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결혼과 결혼서약의 원조 국가라 할 만한데,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앨런 맥팔레인의 <잉글랜드에서의 결혼과 사랑>(나남, 2014)은 바로 1300년에서 1840년까지 영국의 결혼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저자는 토마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제시한 가정들을 근거로 한 결혼관을 ‘맬서스주의적 결혼체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결혼체제의 기원과 전망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근대의 지배적 결혼관이 어떤 가정과 계산에 의해 지탱되어 왔는지 이해하도록 해준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진지하게 읽어봄직하다.

 

14.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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