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린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열린책들, 2011)를 읽고 적었다. 전혜린의 유고 에세이집 제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현재는 번역본이 한 종밖에 나와 있지 않다. 영어본도 절판된 상황이어서 구해본 건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대역본인데, 발췌본이다. 열린책들판 번역에 아쉬운 대목이 있어서 전혜린 번역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백만사, 1980)도 도서관에서 빌려 참고했다. 전혜린본은 동민문화사(1967)판이 최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14. 04. 21) 폐허 속 희망을 본 하인리히 뵐
 
전후 독일문학의 양심으로도 불린 하인리히 뵐의 초기 대표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를 읽었다. 어떤 독자에게는 전혜린의 유고 에세이집 제목으로도 친숙할지 모르겠다. 전혜린은 뵐의 작품을 유고 번역으로 남겨놓았기에 인연이 없지 않다. 법과대학에 재학중이던 전혜린이 ‘새로운 땅’ 독일로 유학을 떠난 해가 1955년이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떠난 독일에서 전후문학의 기수가 쓴 ‘폐허문학’과 조우한 것이라고 할까. 
 
1952년이 시간적 배경이지만 2차 대전 패전국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고 주인공 프레드와 캐테 보그너 부부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무엇보다도 가난이 일상을 짓누르며 이웃의 편견이 고통을 배가시킨다. 가톨릭교회의 유력한 신자이자 주택위원회 회장이기도 한 집주인 프랑케 부인이 프레드가 술주정뱅이이고 캐테가 성당의 단체 행사에 적극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부부의 주택 신청을 거부하는 바람에 사정은 더 나빠졌다. 
 
프레드는 성당의 전화교환수로 일하지만 박봉이어서 부업으로 과외까지 병행한다. 그는 폭력을 본능적으로 혐오하지만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면서 마음이 여유를 잃다 보니 사소한 일로 아이들에게 손찌검까지 한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두 달째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아이들과 남은 캐테의 일상은 더러움과의 투쟁으로 채워진다. 장롱을 조금만 움직여도 회칠한 벽에서는 석회 덩어리가 우수수 떨어지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레질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구역질나는 현실 속에서 ‘신’이라는 단어만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여기는 캐테야말로 진정한 신자다. 캐테는 프랑케 부인과 같은 사람들이 ‘하느님 장사’를 하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한 집에 살지 않으므로 프레드와 캐테는 가끔씩 바깥에서 만나 밤을 보낸다. 값싼 호텔에라도 하룻밤 묵으려면 프레드는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주말에 아내는 헤어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낸다. 가난은 그렇게 부부의 사랑까지 파괴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작가 뵐은 냉정한 현실을 과장 없이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회복의 길도 제시한다. 
 
상이군인인 아버지, 바보 동생과 같이 살아가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간이식당의 소녀에게서 프레드가 감동을 받았다고 하자 캐테는 자신도 그런 감동을 준 적이 있는지 묻는다. “그런 적은 없지만 내 마음을 돌린 적은 있어. 내가 아주 심하게 아플 때였지.”(열린책들) 오래전 전혜린의 번역본에서는 “당신은 내 심장을 건드리질 않고 뒤집어엎어 버렸어. 나는 그때 아주 병이 나 있었어, 그 때문에.”라고 옮긴 대목이다.
 
프레드의 나이가 썩 젊지 않았던 때였음에도 캐테는 프레드의 마음을 뒤집어엎은 전력이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기도 하다. 그때의 감정을 상기하면서 가난에 무뎌진 프레드의 열정은 다시 회복된다. 이튿날 길거리에서 어떤 여자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한 감동과 흥분을 느끼며 뒤쫓아 가는 게 그 증거다. 한데 놀랍게도 그 여자는 아내 캐테였다. “15년간 결혼생활을 해온 내 아내는 여전히 내게 낯선 동시에 또 무척 낯익게 생각되었다.” 이 소설이 프레드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주 당연해 보인다. 뵐이 암울한 폐허 속에서 발견한 은총인지도 모른다. 
 
14. 04. 20.
 
P.S. 인용한 대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적으면 보그너 부부의 대화장면을 열린책들판은 이렇게 옮겼다. 

"나도 당신 마음을 감동시킨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은 없지만 내 마음을 돌린 적은 있어. 내가 아주 심하게 아플 때였지. 그리 젊지 않을 때였고." 나는 말했다.(191쪽)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대역판은 이렇게 옮긴 대목이다. 

"Did I also touch your heart?"
"You didn't touch my heart, you turned it upside down. It made me quite ill at the time. I wasn't young any more," I said.
"나도 당신을 감동시켰어요?"
"당신은 날 감동시킨 게 아니라 내 가슴을 발칵 뒤집어 놓았었지. 그래서 그때 난 아주 앓았었지. 이미 젊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는 말했다. 

이 대목만큼은 시사영어사판 혹은 영어판이 열린책들판보다 더 적합한 번역으로 보인다. 오래전 전혜린본에서 '뒤집어 엎어버렸다'고 옮긴 것과도 상응하고. 독어 원문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요는 '마음을 감동시키다'보다 더 강한 표현이어야 하고, 그 결과로 프레드가 한바탕 가슴앓이를 했다는 내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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