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깜박한 일인데,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4월도 1/3이 지났으니 읽을 책도 1/3은 줄여야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목록으로서의 의미도 있으니 하던 대로 고르도록 한다. 그 사이에 올해도 목련이 피고졌다.
1. 문학예술
정이현 작가가 추천한 책은 한국미니픽션작가모임에서 펴낸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호미, 2014)다. "이 책은 특별히 글쓰기 훈련을 해오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자기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객관화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을 띠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한 뼘 자전소설’이란 픽션과 픽션 아닌 것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새롭고 재미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평했다.
예술분야의 책으로 내가 고른 건 손수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의 <도시의 표정>(열화당, 2013)이다. '서울을 밝히는 열 개의 공공미술 읽기’가 부제. 문화부 기자의 이력도 갖고 있는 저자는 <문화의 표정>(열화당, 2010)이란 문화예술론도 펴낸 바 있다. 공공미술에 관한 책이 드문 편인데, 우리 공공미술의 현실을 짚어보게 해주는 책이다.
더불어 봄날에 읽을 만한 시집도 몇 권 골라본다. 문학동네 시인선 50권째로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문학동네, 2014)와 이영주의 <차가운 사탕들>(문학과지성사, 2014), 신해욱의 < syzygy>(문학과지성사, 2014) 등이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의 책으론 정창석의 <만들어진 신의 나라>(이학사, 2014)와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이후, 2014)가 추천도서다. <만들어진 신의 나라>는 "일본의 천황제와 침략 전쟁의 논리를 분석하여 현대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조명한 책"이고, <동물들의 침묵>은 그레이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자신을 맡겼던 중세의 세계관뿐 아니라 근대 이후의 무신론과 휴머니즘도 과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공격한다". 화제작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이후, 2010)의 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개인적으로는 한병철 교수의 책들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존 그레이의 문체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 관련서 몇 권도 이 참에 챙겨놓자면, 데이비드 스즈키와 쓰지 신이치의 <또 하나의 일본>(양철북, 2014)는 "캐나다에서는 일본인, 일본에서는 캐나다인인 데이비드 스즈키와 30세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쓰지 신이치가 2년여 동안 일본 곳곳을 찾아다니며 직접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최석영의 <혼신의 힘>(인물과사상사, 2014) "혼신의 힘을 다해 인생과 대결한 일본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그리고 학술쪽으로 관심을 끄는 책은 윤수안의 <'제국일본'과 영어.영문학>(소명출판, 2014)이다. "영어와 영미문학이 일본 제국주의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 제국의 언어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한" 책이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의 추천도서는 마이클 폴란의 <요리를 욕망하다>(에코리브르, 2014)와 공규택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발칙한 생각들>(우리학교, 2014)이다. 후자는 청소년용인데,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폴란의 책은 사실 독서를 미루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인데, 혹시라도 요리에 관해 흥미를 갖게 될까 걱정돼서다. 원서에까지 눈길이 가는 걸 보면, 흠 손이 안 가게 주의해야겠다.
사회과학 쪽 책으론 연대와 공존, 공공성을 주제로 한 책 몇 권도 꼽아놓는다. 묵직하지 않아서 가볍게 손에 들 수 있는 책들이다. 개념사 시리즈로 나온 하승우의 <공공성>(책세상, 2014), 데루오카 이츠코의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궁리, 2014), 그리고 댄 핸콕스의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위즈덤하우스, 2014) 등이다.
4. 자연과학
이한음 위원이 추천한 책은 안상현의 <우리 혜성 이야기>(사이언스북스, 2013)다.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옛 문헌들 속에 혜성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찾아본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세트'로 나왔는데,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의 100년사를 정리한 페드루 페레이라의 <완벽한 이론>(까치, 2014)과 만지트 쿠마르의 <양자혁명>(까치, 2014)도 이달에는 책장에 꽂아둘 만하다.
5. 실용일반
이하경 위원이 추천한 책은 김보경의 <낭독은 입문학이다>(현자의마을, 2014). "오랜 인문학적 사유의 과정과 낭독에 참여한 북코러스 회원들의 자기성찰 과정을 담았다." 독서모임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 모임에 참여하는 독자들도 참고할 만하다. 더불어 교양인문학 분야의 책들이긴 하지만, '실용적'으로 활용할 만한 책으로 박홍순의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한빛비즈, 2014)와 유범상의 <필링의 인문학>(논형, 2014)도 꼽아놓는다. '필링의 인문학'에서 필링은 feeling이 아니라 peeling을 가리키는데, 이런 의미라고 한다.
필링(Peeling)의 인문학은 인간을 정치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눈가리개를 문제 삼아 그것을 벗겨내는 것이다. 개인의 영혼은 채찍과 눈가리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를 지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권력관계와 구조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이제 인문학은 개인의 이해와 힐링(healing)을 넘어 공동체의 갈등과 구조를 필링해야 한다. 힐링은 힐링 자체로 힐링되는 것이 아니라 필링과 필링의 정치를 통해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필링의 인문학은 진정한 힐링의 조건을 만들고, 생각하는 정치적 주체를 통해 작동할 것이다.
0. 예수 이야기
알라딘에서 요즘 화제도서 가운데 하나는 인간 예수의 이야기를 다룬 레자 아슬란의 <젤롯>(와이즈베리, 2014)인데, 이번주에는 이탈리아의 전기 작가 조반니 파피니의 <예수 이야기>(메디치미디어, 2014)까지 출간됐다.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주제의 책이 자주 눈에 들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폴 버호벤의 <예수의 역사적 초상>(영림카디널, 2010)도 구입했다. "신약성서에 있는 네 권의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의 삶을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약성서에 감춰진 인간 예수의 모습을 유추하고 있다." 보통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예수의 삶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로 저자는 우리가 아는 영화감독 버호벤인데, 예수의 전기 영화를 찍고 싶어서 성경 세미나에 참여했다가 이런 책까지 쓰게 됐다고 한다...
버호벤 얘기가 나온 김에 덤으로 한권 더 고르자면 그의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1997)의 원작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황금가지, 2014)가 새로 번역돼 나왔다. 기존 번역본이 절판된 상태라 아주 요긴한 번역본이기도 하다. 군국주의를 미화한다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작품이다. 실제로 그런지는 읽어보고 판단해볼 일이다...
14. 04. 10.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새로 번역돼 나온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고른다. 열린책들판으로 나왔는데, 기존 번역본들과 비교해가며 읽어봐도 좋겠다. 사실 유명한 데뷔작이긴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래도 다수의 번역본이 있는 만큼 여유를 가지고 도전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