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와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 강의>(을유문화사, 2012) 두 권을 함께 다룬 서평이 실렸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5998). 필자는 연대 비교문학 박사과정의 김윤하 씨이며, 나보코프에 관한 논문을 준비중이면서 최근 나보코프의 <오리지널 오브 로라>(문학동네, 2014)를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와 관련된 대목을 발췌해놓는다.
프레시안(14. 04. 04) 문학이여, '민중의 메시아' 노릇을 집어치워라!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현우 지음, 현암사 펴냄). 제목만 비슷한 게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작가 한 명 한 명을 차례로 다루는 강의 형식까지 흡사한 두 권의 러시아 문학 강의록이 약 1년 반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출간되었다.
전자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40년에서 1959년까지 약 20여 년간 미국 대학 강단에서 강의했던 강의록(1981년 초판 출간)의 번역서이고, 후자는 '로쟈'라는 필명의 서평가로 유명한 저자가 90년대 중반부터 역시 약 20여 년간 대학 전공 강의는 물론 일반 청중 대상의 교양 강좌로도 꾸준히 해왔던 러시아 문학 강의의 내용을 강의록 형식으로 정리한 러시아 문학 입문서(19세기 편)이다.
그동안 러시아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러시아 문학 입문서나 개론서가 변변치 않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 두 권의 강의록은 그동안 러시아 문학 독자가 느낀 갈증을 해갈해주는 한편, 러시아 문학에 대한 독서욕을 자극하며 자양분을 제공하는 든든한 러시아 문학 안내서 및 참고서 역할을 꽤 오랜 기간 전담할 것 같다. 제목과 강의록이라는 형식, 또 주로 다루는 등장인물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사실 이 두 권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어느 한쪽을 더 권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미덕과 효용을 가져서 일단은 두 권을 상호참조해가며 함께 읽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본다.
조심스러운 사견으로는, 그동안 러시아 문학을 꽤 많이 읽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독자들이라도 <로쟈의 러시아 문학>의 정돈되고 정제된 러시아 문학사와 작가들에 대한 충실한 해설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을 찾게 될 터, 우선 <로쟈의 러시아 문학>을 통해 러시아 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점검한 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을 읽기를 권한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은 아무래도 다뤄지는 작품을 일독하고 읽으면 더 깊게 공감할 요소가 많으니, 러시아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로쟈의 러시아 문학>을 먼저 읽고 관심이 가는 작품을 골라 읽은 후 나보코프의 책을 읽는 방법을 추천한다.
로쟈의 친절한 스토리텔링 가이드
두 책의 목차를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이 (부록 격인 개별 주제 강연 글들을 제외하면) 고골로 시작해 고리키로 끝나는 반면, <로쟈의 러시아 문학>은 푸슈킨에서 시작해 체호프로 끝난다는 것이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쪽이 "푸슈킨에서 시작해 체호프로 끝나는 19세기”라는 시대 구분을 더 확실히 지킨 셈이다.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만든 작가 푸슈킨이 빠진 건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쪽의 큰 공백이지만, 나보코프의 의도라기보다는 단순한 기술적인 탈락에 가깝다(나보코프의 푸슈킨론은 이 강의록이 출간되기 훨씬 전에 저자 자신이 출간한 <예브게니 오네긴>의 영어 번역과 이에 대한 방대한 양의 주석 판 속에 이미 다 흡수되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나보코프 자신의 편집과 정리를 거쳐 출간된 강의록이 아니라, 작가 사후에 작가의 강의용 원고와 노트 등을 취합해 제3자가 출간한 모음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에 반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연속된 강의의 형식을 빌려 19세기 러시아 문학사를 흥미진진한 갈등요소와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득한 한 편의 연속극처럼 리듬감 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돋보인다. 이는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로,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을 개별적인 장으로 다루면서도 작가들 간의 직간접적인 영향관계나 문학사적 흐름을 꼼꼼하게 짚어주어 책 한 권을 하나의 매끄럽게 완결되는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에서 다뤄지지 않는 두 작가가 포함된, 푸슈킨-레르몬토트-고골로 이어지는 러시아 낭만주의 파트는 저자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러시아 문학사 전체를 놓고 봐도 중요한 고비가 되는 장면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니, 저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러시아 문학의 독특한 정체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러시아 근대 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이 세 작가의 소설들이 모두 일반적인 유럽의 근대 소설과는 다른 기묘한 형태를 띤다는 점, 즉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운문' 소설이고,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은 독립적으로도 읽을 수 있는 단편들의 '연작' 소설이며, 그나마 일반적인 근대 소설의 형식을 띤 고골의 <죽은 혼>은 작가 자신이 붙여 놓은 부제가 무려 '서사시'라는 점을 지적하는 대목은, 출발부터 독특했던 러시아 문학의 기이한 매력을 단적으로 요약하는 부분이다.
작가에 대한 전기적이고 문학사적인 맥락의 해설 후 이어지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 파트는 해당 작품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먼저 읽을 일반 독자를 고려해 줄거리 요약 위주로 분석이 전개된다. 그 줄거리 요약 자체도 재미있거니와 중요한 대목마다 곁들여진 저자의 코멘트나 해석 또한 적절하고 참신해서 이미 줄거리를 다 아는 독자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해당 작가나 작품의 성과 및 문학사적 의미와 함께 그 한계 또한 명쾌하게 짚고 넘어가는 각 장의 마무리는 다음 장에서 만날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며 작가와 작품들을 문학사 전체의 맥락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시야를 마련하는 효과적인 서술 전략인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문학의 유명한 꿈들(타치야나의 꿈과 라스콜리니코프의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 소설들의 마지막 장면이나 에필로그(가령 <죄와 벌>과 <첫사랑>의 에필로그)에 대한 저자의 참신한 해석 같은 부분이, 입문서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깊이 있고 다층적인 텍스트 독해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