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에 나왔더라면 감격했을 뻔한 책이 뒤늦게 나왔다. 알지르다스 쥘리엥 그레마스의 유작 <정념의 기호학>(강, 2014)이다. '물적 상태에서 심적 상태로'가 부제. 당시에 영역본을 구하지 못해(책은 나와 있다. 나중에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다) 잘 읽지 못하는 불어본까지 구했던 책이다(책의 '물성'은 느낄 수 있으니까). 이유가 없지 않았다. 학위논문에서 애도와 우울증을 다루면서 그레마스의 모델을 원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타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념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모델화할 수 있을까란 문제.

 

 

 

격세지감으로 지금은 거의 잊혀지고 있지만 파리 기호학파의 좌장으로 그레마스는 롤랑 바르트와 함께 프랑스 기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특히 서사학 분야에 큰 공적을 남겼고 정념의 기호학은 그가 말년에 새롭게 개척한 분야. <정념의 기호학>은 제자 퐁타뉴와 공저로 펴냈는데, 일종의 '시범적' 성격의 저작이다. 그 이후에 얼마만큼 더 진척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의문이기도 하다(적어도 나는 별로 들은 바가 없다).

 

 

 

그레마스의 책으론 <의미에 관하여>(인간사랑, 1997)가 번역돼 나왔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고 번역도 좋지 않기에 번역의 의의가 별로 없는 책이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김성도 교수의 연구서 <구조에서 감성으로>(고려대출판부, 2002) 정도를 도서관에서 참고해볼 수 있겠다. 아, 박인철 교수의 <파리학파의 기호학>(민음사, 2003)은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그레마스 기호학의 배경과 주제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다.   

그레마스의 주저는 <구조의미론>인데, 알라딘에서는 영역본이 검색되지 않는다. 그의 서사학은 러시아의 민담 연구자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민담형태론>의 발상을 발전시킨 것인데, 프로프의 책은 서너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기호학이나 서사학은 십수 년 전에 한창 관심을 가졌다가 지금은 옛사랑처럼 감흥을 잃은 상태다. <정념의 기호학>이 흥미를 다시 북돋아줄 수 있을지 한번 뒤적여봐야겠다...

 

14.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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