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조르조 아감벤 같은 명망가들의 책도 나왔지만, 그간에 좀 덜 조명된 저자들을 골랐다. 한꺼번에 책이 여러 권 나온 점도 감안해서 에릭 호퍼를 첫 손에 꼽는다.
'길 위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릭 호퍼의 책 세 권이 함께 나왔다. 다시 나온 <길 위의 철학자>(이다미디어, 2014) 외에 <영혼의 연금술>, <인간의 조건> 등인데, 평생 11권의 책을 썼다고 하니까 이쯤 되면 2/3 정도는 국내에 소개된 셈이다. 에릭 호퍼는 누구인가.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 생활로 일관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독서와 사색만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1902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7세 때 시력을 잃어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15세 때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18세때 가구 제조공이었던 부친이 돌아가시고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28세 때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이후 10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떠돌이 방랑자의 삶을 이어갔다. 1951년(49세)에 자신의 대표작<맹신자들>를 발표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되었다.
이번에 추가된 <영혼의 연금술>과 <인간의 조건>은 아포리즘집.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독자적인 사상체계을 세운 에릭 호퍼는 과학적 추론이나 논리적 실증보다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자신만의 선언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과학적 논리보다는 예술적 영감이나 표현방식이 본질에 접근하는 데 더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란 설명이 뒤따른다. <영혼의 연금술>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1951년 <맹신자들>을 펴낸 이후 그의 두 번째 책이다. <맹신자들>이 대중운동의 성격과 실상을 파헤친 반면, <영혼의 연금술>은 대중운동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본성과 역할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추적한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매료되고, 또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나티시즘(광신, 맹신, 열광)의 원천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호퍼의 책으로 가장 먼저 읽을 만한 건 그의 자서전으로도 소개된 <길 위의 철학자>겠다(이번에 나온 게 새번째 판이다).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가 부제.
<길 위의 철학자>와 <맹신자들>을 먼저 접한다면 2012년에 번역돼 나온 책 세 권도 얹을 수 있겠다. 비교적 얇은 책들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의 저자 마이클 폴란의 최신작도 번역돼 나왔다. <요리를 욕망하다>(에코리브르, 2014). '요리의 사회문화사'란 부제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많은 시간을 들여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걸까? 이 책은 올바른 요리의 미덕과 가치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류 고유의 활동인 요리는 우리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가족의 삶을 형성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아주 즐거운 일이다. 폴란은 세계 곳곳의 셰프들을 만나고 직접 해봄으로써 아주 미세한 효모의 작용부터 통돼지구이에 이르기까지 음식의 신비를 밝히며 우리를 요리의 가장 기초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하여 이 엄청나게 재미있고 멋진 책은 우리를 마법 같은 요리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든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이 우리의 먹거리를 점검했다면 이번엔 요리다. 요리에 대한 식견과 교양 지수를 한껏 높여줄 만한 책. 앞서 나온 <푸드 룰>(21세기북스, 2012)을 보면(어찌된 일인지 벌써 절판됐다) 저자의 '건강한' 요리관을 엿볼 수 있는데, 그가 말하는 '세상 모든 음식의 법칙'은 간단하다. "가장 허기질 때,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가장 적게 먹으라." 그리고 실천 규칙.
우선 영양학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영양학은 아직 젊은 학문이고, 무엇보다 영양학이 목적으로 하는 바는 우리의 건강이 아니다. 둘째, 몸에 좋은 가공 식품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셋째, 음식처럼 생긴 물질과 음식은 다르다. 넷째, 배고플 때와 먹고 싶을 때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일상적인 식사와 특별식을 반드시 구별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안 되니까 자주 되뇌어봄직하다.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다른세상, 2009) 등의 책에서는 적극적인 환경운동가로서의 면모도 읽을 수 있다.
끝으로, 영국의 철학교수이자 칼럼니스트 앤서니 그레일링. 이번에 그가 서문을 붙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판 <근대의 탄생>(아고라, 2014)가 출간됐고, 저서로는 '우정에 관한 11가지 철학적 질문'을 다룬 <또 다른 나, 친구>(중앙북스, 2014)도 나왔다. 어떤 인물인가.
깊이 있고 수준 높은 인문학 교육을 위해 신생 인문대학 뉴 칼리지 오브 더 휴머니티스(NCH)를 설립해 현재 총장직을 맡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니얼 퍼거슨, 피터 싱어 등 세계 최고 석학들이 교수진으로 자리한 이 학교에서 앤서니 그레일링은 학생을 가르치고, 책을 쓰고, <타임스>와 <가디언>에 칼럼을 기고하고, 때로는 라디오와 방송에 출연해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는 등 인문학과 철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새 인문학 사전>(웅진지식하우스, 2010)과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블루엘리펀트, 2013) 같은 책이 소개되면서 이름을 기억하게 된 저자다. 지식 대중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이름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번에 나온 <근대의 탄생>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근대의 사상사적 사건들과 그것들의 성과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그 중심에 ‘빛의 세기’라는 뜻을 지닌 계몽주의를 설정하고 이 사상이 각 시대와 지역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어떻게 발현되었고,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총괄하여 살펴보고 있다.
근대 계몽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안내서로 삼아도 좋겠다...
14.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