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아시아경제 지면에 실린 '리더의 서재에서'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일부 부정확하게 녹취된 부분이 있다). 인터뷰어는 윤승용 논설고문이었다. 서평 블로거란 직함으로 소개됐는데, 지면에는 누적 방문자가 3,200만명이라고 나가서 놀랐다. 아직 그 1/10인 320만명 정도다(일일 방문자도 2000명선까지 갔다가 지금은 1500명 정도다). 더 분발하라는 채찍 같기도 하다. 그리고 소개에서 '김현 이후 이론과 감성을 제대로 교직한 아름다운 문체의 문예비평가로도 평가받는'다는 대목은 멋쩍게도 필자가 신형철 평론가와 혼동한 게 아닌가 싶다. 인터뷰와 함께 추천도서 다섯 권이 소개됐는데, 몇 권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코너에서 골랐던 책들과 겹치지 않도록 골랐다.  

 

 

 

아시아경제(14. 02. 10) [리더의 서재에서] 서평 블로거 로쟈 이현우

 

한국사회에서 나름 책을 좀 알거나, 독서인이나 인문교양인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로쟈’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아이콘이자 전설이다. 책에 대해 궁금하거든  ‘로쟈에게 물어보라’라는 문구가 인터넷 검색어에 등장할 정도로 로쟈 이현우는 최근들어 인문학과 교양학계의 친절한 가이드이자 바지런한 멘토로 자리잡았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2004)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문서평꾼으로 활동하는 바람에 강단학자의 길을 사실상 포기했지만 그는 넓디넓은 인문대중, 호모부커스의 숲에서 인문학의 향기를 전파하는 전도사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그의 필명 로쟈가 근대 여성 공산혁명가 로자(Rosa) 룩셈부르크가 아닌 러시아 문호 표도르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Rodya)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은 이제 인터넷에선 상식이다. 그의 서평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은 요즘 매일 방문객 2,000여명, 현재까지의 누적 방문객이 320만명이나 될 정도로 그는 온라인상 최고의 파워블로거이기도 하다.

 

요즘도 책읽기와 강의, 서평쓰기로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로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인문학계에 요절한 평론가 김현 이후 이론과 감성을 제대로 교직한 아름다운 문체의 문예비평가로도 평가받는 로쟈를 아시아경제 도서실에서 만났다.

 

-어릴적부터 책읽기에 익숙했나?

▲아버님이 가난한 직업군인이었지만 책을 좋아하셨다. 집에는 세계문학전집 등이 있었는데 자연스레 이를 가까이 하게 됐다.

 

-중학시절엔 잠깐 과학자를 꿈꾸기도 했다던데?
▲중학교 2학년때 새로 부임하신 과학선생님이 암기식 공부가 아니라 실험실습을 강조한 열정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한때 학교에 과학공부 붐이 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수학에는 크게 소질이 없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

 

-필명 로쟈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이현우라는 이름이 워낙 흔해서 필명을 고민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죄와 벌>의 고민하는 청춘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 로쟈에서 따왔다. 그런데 어떤 아나운서는 저를 '노자(老子)'로 소개하는가 하면 근대 여성 공산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로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어떤 글에선 '로자' 룩셈부르크를 '로쟈'로 쓴 경우도 봤다.

 

-최근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펴내는 등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던데 러시아 문학의 매력이라면?
▲러시아에는 톨스토이, 도스토에프스키 등 이른바 대문호라할 큰 작가가 많다. 서유럽과 달리 러시아의 경우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 훨씬 컸고, 실제로 그 기대에 부응한 측면이 많다. 이른바 문학극대주의현상이 러시아에서는 통했다. 

 

-현재 서평을 기고하는 매체는 몇 개나 되고 출강하는 곳은?

▲시사주간지 ‘시사인’, 한겨레,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서평지 ‘책&’ 등에 정기기고중이다. 기타 계간지 등에서 부정기적으로 청탁을 받아 글을 쓴다. 강의는 대학 강의를 비롯 전국 곳곳에 특강이 많다.

 

-어떤 계기로 서평가가 됐나.

▲2000년대 초반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서평을 쓴 게 시작이다. 당시 '이주의 리뷰'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여기에 서평이 뽑히면 상금 5만원이 나왔다. 책 살 돈이 필요한 나로서는 그 코너에 뽑히는 게 중요했다. 거기서 열심히 하다보니 팬이 생겼고 다음에 인터넷 카페 ‘비평고원’에 책 이야기를 썼다. 그러다 내 독자적인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7년 한 일간지에서 나를  ‘인터넷 서평꾼’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뒤 서평꾼으로 알려지게 됐다. 

 

-서평은 비평과 어떻게 다른가.

▲비평은 독자들이 같은 책을 두 번 읽게, 다시 읽게끔 하는 것이다. 서평은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는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비평은 어떤 책을 이미 읽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서평은 읽지 않은 독자를 상대로 한다. 넓게 보면 서평은 비평에 포함된다. 그런데 요즘엔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적어 비평을 읽는 독자들이 실종됐다. 상대적으로 서평의 역할은 커졌다.

 

- 서평의 역할은 무엇인가?

▲서평은 어떤 책을 읽고 싶도록 하거나, 읽은 척하게 하거나, 안 읽어도 되도록 해준다. 정보홍수 시대에 양서에 대한 일종의 감별사, 도선사 역할이다.

 

-서평을 쓸 때 원칙은.

▲내 주관을 적게 넣는다. 이건 지면 사정과 관련이 있는데 대개 서평 분량이 원고지 9~10장이다. 책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주관적인 판단을 섞는다고 해봐야 한두 문장이다. 다른 필자들은 주관적 느낌을 내용보다 더 중심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독자들이 책 내용을 느끼게 해주는데 주력한다. 개성이 없다거나 호오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서평은 어떤 책을 골랐다는 것 자체가 유익한 정보다. 비평은 다르다. 어떤 책을 비평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는 정보가 안된다.

 

-독자들에 대한 영향력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나.

▲한 10부를 더 나가는 데는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웃음) 출판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면 서평이나 지면 책광고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고를 때 서평을 참고하려는 독자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 독자들이 정보를 얻는 출처가 분산됐을 뿐이다. 내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방문자는 여전히 하루 2000명 정도 된다.

 

-그 많은 서평을 쓰려면 엄청난 독서를 해야 할 텐데, 도대체 책을 얼마나 읽는지?

▲사실 책 읽을 시간이 많진 않다. 다만 강의하고 서평 쓰고 잠 자는 걸 빼면 책 검색, 책읽기, 서평 쓸 책을 고르는 일이 내 일상의 전부나 다름없다. 다행이 내가 주량이 적어 사교활동에 빼앗기는 시간이 적다. 

 

-책은 어떻게 읽나? 겹쳐읽기라는방식을 주장하던데?

▲책의 종류에 따라 읽는 방식이 여러가지다. 목차만 읽는 경우도 있고, 이동 중 차속에서 가볍게 읽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심있는 분야의 경우는 관련 서적 수십권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는 이른바 '겹쳐읽기''병렬독서'라는 걸 할 수 밖에 없다. 즉 책을 읽다 새로운 개념이나 이론이 나오면 관련 책을 찾아보고 하는 식이다.

 

-책 사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것 같은데?

▲무명시절에는 책값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아마 아파트 한채 값이 넘을 것이다. 요즘의 경우 출판사 등에서 참고하라고 매주 20~30권씩 우송돼 오는데 이밖에 개인적으로도 그만큼씩 사기도 한다. 내가 사는 책과 받는 책을 합하면 연간 2000권쯤 될 것이다. 책값만 월 200만원 이상이 들고, 재작년엔가 연말정산 할 때 보니 교보(*알라딘)에서 구입한 책값만 3,000여만원이더라.

 

-잘못된 번역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이 화제던데.

▲번역의 오류는 지적인 범죄나 마찬가지다. 저자의 본 뜻을 왜곡전달하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다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다.

 

-대학교수로서의 길은 포기한 건가?

▲처음에는 이른바 '곁다리 인문학자'라 할 서평을 한시적으로 할 계획이었다. 60대 서평가는 이상하지 않나. 3년 복무라고 생각했는데 2007년부터 잡으면 이미 3년을 초과해 장기복무하는 셈이 됐다. 좋은 후계자가 나타나면 전역하고 싶은데, 잘 안되고있다. 그리고 의무적인 학술논문 생산작업에 몰두해야하는 강단학자의 길도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대로 된 비평을 해보고 싶다. 책을 자세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 그리고 서평 독자들을 어느 정도 규모로 만든 뒤 이 독자들과 함께 더 깊이 읽는 독서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독자들이 5천여명 이상 된다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인문독서 확산운동 차원에서 의미있을 것 같다.

 

<추천도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표도르 스토예프스키/민음사>
고교시절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 게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계기였다면, 그의 이 대표작은 ‘내 인생을 바꾼 책’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 그를 가리켜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라고 부른 것에 전적으로 동감. 인간이란 수수께끼에 대해서, 인간은 무엇으로 고통 받는가에 대해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웠다. 그에게 빚이 있다. 

 

◆영혼의 절규<바슬라프 니진스키/푸른숲>

러시아의 전설적인 무용수 니진스키가 정신요양원에서 쓴 일기. 결국 그는 완전히 정신을 놓게 된다. 토리노 광장에서 학대받는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결국 정신을 놓은 니체의 어떤 구절들과 함께 니진스키의 마지막 말들은 언제나 슬픔과 함께 고양된 감동을 안겨준다.

 

 

◆정본 백석 시집<백석/문학동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국어 교과서에 백석은 없었지만 그를 읽은 뒤에 그가 없는 한국 근대시사를 상상하기 어렵다. 있더라도 아주 가난해보일 것이다. 시선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나왔을 때,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엔 눈이 푹푹 나린다”는 첫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울어도 좋을 뻔했다. 

 

◆백가쟁명<이중톈/에버리치홀딩스>

중국의 명강사 인문학자 이중톈의 많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중국 선진(先秦) 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에 대해서, 특히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네 가지 핵심 조류에 대해서 저자는 족집게 선생처럼 정리해준다. 두꺼운 분량임에도 아껴가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대학시절 읽은 교양과학서 가운데 가장 압권은 역시나 도킨스의 책이었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면서, 다윈주의 세계관에 대한 입문서로도 읽을 수 있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다는 사실에 가끔 감동하는 건 이 책에 힘입은 바 크다.

 

14.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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