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을 자주 검색해보는 이라면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1853)이 갑자기 눈에 띈다고 느꼈을 법하다. 나 같은 경우다. 지난달에 번역본 한 종이 나오더니 이달에는 두 종이 더 나온다. 어떤 책인가.
솔로몬 노섭이 쓴 <노예 12년>은 뉴욕 주에서 자유민으로 태어났으나 남북전쟁 전에 납치를 당한 뒤 노예로 팔려가 루이지애나 주에서 12년간 노예로 붙잡혀 있던 한 흑인 남성의 회고록이다. 19세기 중엽 미국 워싱턴 D.C. 노예 시장의 실상, 미국 남부 농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노예 노동의 구체적 현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과 폭력, 굶주림과 탈출 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발했다.
물론 이번에 갑자기 번역본이 쏟아져나온 건 그런 '고발' 때문이 아니다. 알고 보니 <슬럼독 밀리어네어> 제작팀이 영화화해서 이달에 개봉한다고(펭귄클래식은 아예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썼다).
어떤 경로이든 책과 접할 수 있다면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보지만, 영화화될 때만 대중적 관심이 환기된다는 건 우리시대의 특징이라고 해야겠다. 그냥은 안 되는 것이다.
솔로몬 노섭은 12년간의 노예생활에서 돌아와서는 노예제 페지 운동가로 활동했다고 하며 1853년 <노예 12년>을 출간했을 때는 이례적으로 3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한다. "노예 제도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설과 강연을 활발히 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사망 연도는 1863-1875년 사이로 추정되며,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노예 12년>이 나오기 직전에 해리엣 비처 스토의 <톰아저씨의 오두막>(1852)이 출간돼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다. 잘 알려진 일화대로, "1862년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에 스토 부인을 초청하여 '당신이 이 위대한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책을 쓴 작은 여인이군요!'라고 찬사를 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하듯,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을 일으키며 미국 역사를 뒤바꾼 소설로 기억된다."
비교하자면, <노예 12년>은 실제 체험을 담은 수기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수기로는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책도 소개돼 있다. 번역본은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지만지, 2001)와 <노예의 노래>(모티브, 2003)으로 나왔다(후자는 절판). 거기에 보태자면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으로 해리엇 제이콥스의 <린다 브렌트 이야기>(뿌리와이파리, 2011)도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한 책.
미국 흑인 노예 여성이 쓴 최초의 자서전. 노예 여성들이 겪는 성적 착취와 학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미국문학사의 고전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노예 서사'라는 장르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진위 논란을 잠재운 저자의 친필 편지 15통과 동생 존 제이콥스가 쓴 '노예제의 진짜 얼굴'을 함께 수록했다.
곧 개봉된다면 영화 관람과 함께 이런 책들도 일독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14. 02. 08.
P.S.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농노제와 미국 노예제를 비교한 책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몇년 전 사바 푸를렙스키(1800-1868)의 수기를 옮긴 <러시아인의 삶, 농노의 수기로 읽다>(민속원, 2011)를 구입해놓고 아직 손을 들지 못하고 있다. 솔로몬 노섭이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책과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더 나아가 조선의 노비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관련서로 피터 콜친의 <예속된 노동: 미국 노예와 러시아 농도>(1990) 같은 책이 번역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