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식전, 식후가 막간인 듯싶다. 막간에 '이주의 고전'에 대해서 한마디 적는다. 한두 전에 나온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아카넷, 2014)이 계기다. 예전에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아카넷, 2005)와 같이 언급하면서, 아직 나오지 않은 이 책을 <일반정신병리학>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정신병리학 총론>으로 낙착됐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저작이라 번역본이 출간될 수 있을지 미지수였는데, 그래도 학술명저번역 총소의 하나로 나오긴 했다. "독서와는 별개로 책 수집가로서 내가 욕심을 내볼 수 있는 최대치"에 해당하는지라 구입은 아직 미루고 있다(<심리학의 원리>는 지난번에 구하긴 했지만). 물론 책값도 만만찮긴 하지만, 내 경우엔 보관할 장소가 없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이런 책을 책장에 꽂아두지 못하고 바닥에 쌓아두어야 한다면 장서로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잖은가!).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초판이 출간된 지 100년이 넘어감에도 여전히 정신의학의 기본 문헌이자 이정표가 되는 저작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고전이다. 책은 정신과(科) 영역의 무수한 현상과 증상을 특정 학설에 치우치거나 집착하지 않고 현상학적으로 기술·정의·분류하고 있으며, 정신 증상을 평가·이해하는 데 필요한 폭넓은 영역에 대해 체계적 지식과 방법론을 제공하고 있다. 근자에 와서 철학과 정신의학 간에 개별 이론적 교류를 넘어 방법론적 차원에서부터 대화가 시도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병리학 총론>은 철학과 정신의학의 공동 수원지(水源池)로서 현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여전히 '정신의학의 기본문헌'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만(정말 의대 정신의학 전공자들이 아직 이 책을 읽는단 말인가?) 역사적 가치나,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갖고 있을 듯하다. 또 한편으론 야스퍼스 독자들에겐 다른 종류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고. 아무튼 개인 장서로 하기엔 무리가 따를지라도 도서관에서만큼은 비치해놓으면 좋겠다.
<정신병리학 총론>에 대해 적으려니 같이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나남, 2010). 역시나 네 권짜리 번역돼 나왔다는 점 때문인데, '언제 읽을까'라거나 '어디에 보관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어떤 책인가.
이 책 <정치경제학 원리>는 고전경제학의 오류를 집대성했다는 비판이 가장 혹독한 비판일 정도로, 고전경제학의 완결본이라는 점에는 거의 이론이 없다. 갈브레이스는 밀의 책이 경제학 최초의 교과서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저술을 통해서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수입도 챙기는 문필의 전통을 개척한 작품이며, 문학적 탁월성에서 다시는 필적할 상대가 없으리라고 보았다. 실제로 이 책 <정치경제학 원리>는 출판된 직후부터 1890년에 마셜의 <경제학원리>가 나올 때까지 영국 경제학계의 경전이었다.
그러니까 경제학도나 경제학 고전 독자라면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학원리>(한길사, 2010)와 함께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 정도는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 이럴 땐 내가 경제학자가 아닌라는 게 아주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비록 의무는 아니지만, 욕심마저 막을 수는 없어서 적당한 공간이 마련된다면, 이 책들에도 한 자리 내줄 용의는 있다. <정신병리학 총론> 옆에 <정치경제학 원리>를 나란히 꽂아두는 것도 모양새가 나쁘진 않겠다. 어쩌면 정신병리학과 정치경제학이 다루는 대상은 서로 심오하게 내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14. 0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