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해 간단히 적었다. 네댓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는데, 이성복 시인이 옮긴 문학과지성사판을 책장에서 찾지 못해 을유문화사판과 펭귄클래식판으로만 읽었다. 작가 지드의 말로는 <배덕자>가 배덕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이라면 <좁은 문>은 미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배덕자>도 읽을 만한 번역본으로 다시 나오면 좋겠다...
한겨레(14. 01. 27)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을 막은 것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오랜만에 읽었다.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 얘기다. 알다시피 그들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사촌 관계가 장애물은 아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지드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에서 발단은 제롬이 열네 살 때 벌어진다. 외사촌 누나 알리사는 열여섯 살 때다. 방학 때마다 외삼촌댁에 들르던 제롬이 하루는 외숙모가 자기 방에서 젊은 장교와 희롱하는 걸 엿보게 된다. 알리사의 방으로 가보니 그녀는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눈물에 젖은 알리사의 얼굴을 본 순간 제롬은 자기 운명이 결정됐다고 믿는다. 사랑과 연민에 도취되어 그는 인생의 목적이 알리사를 보호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롬은 외숙모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외숙모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미덕은 갖추지 못했다. 외삼촌 가족과 같이 간 교회에서 제롬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를 주제로 한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크고 넓은 길은 그에게 외숙모의 방을 떠올려주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알리사의 방문이 되었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제롬은 스스로를 축소하고 모든 에고이즘을 비워내기로 한다. 그 사랑으로 가는 길은 고행의 길이어야 했다. 이것이 제롬의 알리사에 대한 사랑의 형상이다. 암시적이게도 제롬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알리사를 찾아보려고도 않고 교회를 빠져나온다. “멀어짐으로써 그녀에게 더욱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제롬은 알리사와의 결혼을 원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와 불확실한 미래를 핑계로 결혼은 미뤄진다. 게다가 제롬은 약혼 같은 형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약혼을 재촉하는 사촌동생 쥘리에트의 말에 “서약 같은 건 사랑에 대한 모욕”이라고 답할 정도다. 그런 서약은 사랑에 대한 의혹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롬의 속내를 읽은 알리사가 먼저 약혼은 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게다가 만남도 자제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에게는 마치 결혼이 ‘좁은 문’처럼 된다. 결혼에 이르는 길은 좁고 험한 길이어야 한다!
제롬을 짝사랑한 쥘리에트가 잠시 장애가 되지만 쥘리에트가 다른 구혼자와 결혼하자 이제 제롬과 알리사 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남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 장애물도 없는 상황이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 알리사에게 이르는 사랑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알리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포옹도 해보지 못했다. 제롬이 더 적극적으로 구애했더라면 알리사의 태도도 달라질 수 있었을 테지만, 오랜 지체 끝에 결국 알리사는 ‘지상의 행복’ 대신에 ‘성스러움’을 택한다.
제롬과의 결혼 대신에 알리사가 선택한 것은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병든 몸으로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알리사의 운명이 ‘더 훌륭한 것’에 부합할까. 알리사가 제롬에게 남긴 일기는 그녀가 어떤 고뇌에 시달렸는지 알게 해준다. 알리사는 덕성과 사랑이 하나로 합류될 수 있는 영혼의 행복을 꿈꾸지만 결국 덕성이란 ‘사랑에 대한 저항’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덕성의 함정’이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란 주제를 반어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14. 0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