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국내 저자로만 골랐는데, 최근 시집을 낸 몇 명의 시인이 물망에 올랐지만 다른 자리에서 다루기로 하고, 역사학자와 문학평론가, 그리고 소설가, 세 명을 고르기로 한다.

 

 

 

먼저, 역사학자 오항녕 교수의 역사 시평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너머북스, 2014). "<조선의 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기록한다는 것> 등을 펴내며, 기억과 기록, 제도와 인간, 국가와 공동체라는 주제를 조선시대 문명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오항녕 교수의 역사 시평"이다. '밀양 인디언'이란 조합이 낯선데,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하워드 진이 ‘역사의 패배’가 갖는 의미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켠에서 풍겼던 다소 슬픈 어조는 유보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말한 ‘역사의 희망’에 방점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디언 절멸 시도는 자본주의를 앞세운 근대 문명의 가당찮은 오만과 함께 시작하여 간간이 승리를 거둔 듯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근대 문명에 기죽지 않기 때문이다. 기죽기는커녕 반격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생활양식을 실천할 적절한 시점에 이른 듯하다. 밀양으로 인하여 미래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밀양의 저항은 인디언의 저항이다. 함께 살 수 있는 길에 대한 깨달음과 진화의 결과이다. 그래서 어떤 길이 낭떠러지인지, 걸어서 안전한 길인지 안다. 밀양과 아메리카의 연기(緣起), 되살아남이다.

그런 깨달음을 저자는 이렇게도 표현한다. “밀양은 인디언이다. 역사의 승패를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밀양 인디언들이 이길 듯하다. 또 이겨야 한다. 한국전력이 이기면 일부만 잠깐 살고 결국 모두 패배할 것이지만, 밀양 인디언들이 이기면 다 같이 살고 그렇기에 모두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역사학자의 냉정한 진단과 신랄한 비판이 오롯한 책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독서에세이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새움, 2014)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초판이 2004년에 나왔으니 10년만이다. 작년 말에는 비평집 <타는 혀>(새움, 2013)도 13년만에 재간된 바 있다. 덕분에 시계 바늘을 10년 전으로 되돌려 추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흘러간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책 또한 시대의 지표가 된다). 시적인 제목은 아래 대목에서 나왔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들에서 나는 서늘한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제법 ‘오래된 인간’이 되어버린 나, 별 수 없이 ‘무화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그런 향기 없는 젊음의 대피소가 기껏 도서관의 지하서고였다.

똑같이 마음이 소금밭인 독자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참에 든 생각이지만, 저자의 평론집이 나온 지 꽤 됐다. 이 정도면 과작 아닌가.

 

 

 

그리고 작가 김지원의 소설선집 세 권이 나왔다. '국경의 밤'의 시인 김동환 선생의 딸이자 김채원 작가와 자매 소설가로 문단에선 잘 알려져 있는데,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건 이번 선집 때문에 알게 됐다. 1주기 추모 보급판으로 나온 선집이어서다. "2013년 1월 30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뉴욕 맨해튼에서 타계했다"고 전하는데, '중년의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만 갖고 있던 터라 '71세'란 나이가 낯설다. 찾아보니 42년생이고 김채원 작가가 46년생이다. 비슷한 연배일 거라고 짐작한 강석경 작가는 51년생. 한 부고기사는 작가의 문학세계를 이렇게 요약한다.

 

 

75년 ‘현대문학’에 소설가 황순원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77년 동생이자 소설가인 김채원(67)씨와 함께 펴낸 첫 소설집 <먼 집 먼 바다>를 시작으로 2~3년 간격으로 장편소설과 소설집을 출간했다. <모래시계> <꽃을 든 남자> <소금의 시간> <물빛 목소리> 등이 잘 알려져있다. 이중 <소금의 시간>은 어머니 최정희의 중편소설 ‘인맥’을 이어 받아 소설화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97년에는 단편소설 ‘사랑의 예감’을 발표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김지원 소설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풍성한 여성성으로 평가받았다. 뉴욕이라는 타지에서의 삶도 그의 문학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어딘가 정착하지 못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쓸쓸한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사랑의 예감’이 대표적이다. 뉴욕과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낯익은 공간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관계의 이면을 섬세하게 다룬다. 거대한 서사를 다루기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는 평을 받았다.(중앙일보)

대표작들이 망라된 이번 선집이 작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듯싶다...

 

14. 01. 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