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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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이 진정한 해방이 되고 인간이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할 일이 있다. 죽은 신이 남긴 그림자인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허무주의를 극복할 것이다. 길은 옛 신에 근원을 둔 낡은 가치를 파기하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있다. 니체는 이 작업을 가치의 전도라고 불렀다. 이때의 새로운 가치는 본연의 가치, 즉 도덕 이전의 자연적 가치를 가리킨다. 앞으로는 이 대지, 이 자연이 모든 가치의 모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의 초월적 이념과 신앙, 그리고 도덕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니체는 루소의 말을 빌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게 되었다. - 18쪽

자연은 다양한 형태의 힘이 지배하는 힘의 세계다. 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신도 신적 섭리도 아니다. 자연은 도덕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자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보다 많은 힘을 확보해 자기를 전개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어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많은 힘을 얻기 위해 끝없이 분투한다. 힘에서 밀리는 순간 도태되기 때문이다. 힘에 대한 이 같은 지향이 힘에의 의지다. 니체는 이 힘에의 의지를 인간의 삶과 역사를 포함해 세계 내의 모든 운동을 추동하는 것은 물론 우주 운행을 주도하는 원리로까지 받아들였다. - 18쪽

힘에의 의지와 함께 니체의 우주 이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당시 자연과학에서 유력한 우주 모델로 수용되고 있던 것은 우주가 총량이 일정한 힘(에너지)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즉 공간은 유한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은 운동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에 힘의 운동에 끝이 있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운동에서 산출되는 시간은 무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니체는 공간이 유한하고 시간이 무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끝없는 이합집산에 의한 순환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우주 운행의 원리로 제시하게 된 영원회귀 교설의 내용이다. - 18-19쪽

영원한 회귀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단순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끝없는 단순 반복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여기서 인간은 극단의 권태와 공허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인간을 엄습하는 것이 허무주의, 또 다른 허무주의다. 이 허무주의는 우주적인 것으로서, 파괴력에서 신의 죽음 뒤에 오는 허무주의를 능가한다. 가치 전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던 앞의 허무주의와 달리 여기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허무주의에 의해 파멸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가. 파멸로 끝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치유는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 허무주의 또한 극복되어야 한다. 니체는 영원한 회귀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권한다. 거기에 세계와 우리의 존재에 대한 최고 긍정이 있다. 운명에 대한 사랑, 이것이 니체가 요구하는 '운명애'다. 이 경지에서 허무주의는 극복된다. - 19쪽

문제는 초월적 이념과 이상 속에서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오늘의 인간에게 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가치를 전도시키고 허무주의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니체는 그럴 힘이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라져야 한다. 존재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닌, 정직하며 강건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거듭난 인간이 바로 위버멘쉬다. 우리가 성취할 최고 유형의 인간이다. -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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