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와의 대화
교황 프란치스코 외 지음, 이유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절판


대담자: 사제 생활을 하시는 동안 많은 실업자들을 만나보셨을 겁니다. 어떤 경험이 있으십니까?

교황: 네 많이 만나봤지요.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가족들과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일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땀 흘려 벌어먹고 살기를 원합니다. 궁극적으로 일이란 사람에게 존엄성을 갖게 해줍니다. 존엄성이란 남이 주는 것이 아니고, 세습되는 것도 아니며, 가정교육 또는 정규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존엄성이란 일을 통해서만 확보됩니다. 내가 스스로 벌어먹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물론 많이 벌면 더 좋죠. 막대한 부를 소유할 수도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면 존엄성은 떨어지게 됩니다.- 53쪽

대담자: 그렇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이 바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교황: 실업자들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낍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관련 부처를 통해 기부의 문화가 아닌 노동의 문화를 장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2001년 아르헨티나가 겪은 것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는 비상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조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는 일자리 창출을 장려해나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앞으로도 계속 말씀드리겠지만 노동이야말로 존엄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 55-56쪽

대담자: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노동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 경우 여가라는 의미를 회복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황: 그 순수한 뜻을 회복해야겠지요. 여가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빈둥거리며 무위도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포상으로서의 위상이지요. 노동 문화와 함께 포상으로서의 여가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일하는 사람이 잠시 쉬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즐기고, 독서하고,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개념이 일요 휴일제가 폐지되면서 퇴색하고 있습니다. 소비사회의 경쟁구도가 점점 더 심화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도 일을 하게 되었지요. 이런 경우 우리는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노동이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상황 말입니다. 일이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건강한 여가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인간은 일의 노예가 됩니다. 이 경우는 더 이상 스스로의 존엄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 밀려 일하는 것이지요. 내가 왜 일을 하는지 그 목적이 왜곡되어버리는 겁니다. - 57-58쪽

대담자: 그렇지만 균형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반면 '진로를 벗어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교황: 맞는 말입니다. 교회는 항상 사회를 해결하는 비결이 노동이라고 지적해왔습니다. 일하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오늘날 많은 경우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최근 몇 십 년간 노동의 비인간화를 고발해왔습니다. 우리는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심각한 경쟁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이나 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겁니다.-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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