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29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플라밍고의 미소>(현암사, 2013)가 출간된 걸 계기로 그의 자연학 에세이가 갖는 의의를 짚어봤다. 지면 기사에서는 자연학 에세이 가운데 여섯 번째로 출간된 책이라고 적었지만,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가 근간 예정인 걸 깜박했다. 정정하자면 다섯번째 책이다. 절판된 <판다의 엄지>도 조만간 나오길 기대한다.  

 

 

 

시사IN(14. 01. 04) 과학 글쓰기의 계관시인이 오다

 

진화생물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스티븐 제이 굴드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비록 국내에서 리처드 도킨스만큼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지 않을지라도 필력으로 따지면 결코 도킨스에 뒤지지 않는, 심지어 ‘과학 글쓰기의 계관시인’이란 평판까지 얻은 이가 하버드대학의 지질학 및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던 굴드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의 하나로 출간된 <플라밍고의 미소>(현암사)는 지난해에 나온 <여덟 마리 새끼 돼지>와 마찬가지로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펴내는 이 월간지에 굴드는 무려 27년간 글을 연재했고 과학 에세이의 전범을 보여준 에세이 300여 편은 책 열 권으로 묶여서 차례로 출간됐다. <플라밍고의 미소>까지 포함하면 국내에는 이제 다섯 권이 번역됐다.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읽은 굴드의 책은 <다윈 이후>였는데, 바로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 가운데 첫째 권이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과 함께 다윈주의와 진화생물학에 눈을 뜨게 해준 책이다. 그 이후에는 자연스레 ‘굴드의 모든 책’이 수집과 독서의 대상이다. 둘째 권 <판다의 엄지>와 넷째 권 <플라밍고의 미소> 사이에 낀 셋째 권 <닭의 이빨과 말의 발가락>도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 건 그 때문이다.

 

각각의 선집은 책을 묶은 시점과 관련해 통일된 주제가 관통한다. <플라밍고의 미소>의 경우에는 생명사의 패턴이 갖는 의미와 서구 사상에 만연한 편향에 대한 비판이다. 이를 포괄해서 굴드는 ‘역사의 본성’이 책의 주제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밍고의 미소>는 “생명은 우연적인 과거의 산물이지 시간을 초월하는 단순한 자연법칙의 불가피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가 아니라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책”이다.


굴드가 ‘서구의 편향’이라고 특별히 지목하는 건 '진보, 결정론, 점진주의, 적응주의'다. 이들 ‘4대 기수’에 대한 그의 비판은 때로 동료 진화생물학자들을 겨냥하기도 한다. 굴드는 전통적인 다윈주의 이론과는 다르게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단속적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단속평형설’을 주창해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가 평생 강조한 것은 진화가 진보를 뜻하는 건 아니며 진화의 역사는 우연에 지배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진화론자가 아닌 이상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진화생물학자는 드물기에 굴드의 비판은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흠이 그의 에세이들이 주는 지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굴드는 과학은 매혹적인 결론들의 목록이 아니라 결실이 많은 탐구의 한 방법으로 정의한다. 공룡의 멸종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세 가지 가설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고환설이다. 백악기 말에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공룡의 고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돼 수컷이 생식력을 잃음으로써 공룡이 멸종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약물설이다. 공룡시대 말기 속씨식물이 진화했고 이들 다수가 향정신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공룡의 간이 이를 해독시키지 못해 결국 약물 과다 복용으로 멸종했다는 설이다. 셋째는 많이 알려진 견해로 재난설이다. 약 65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생긴 먼지구름이 햇빛을 차단하는 바람에 공룡을 비롯한 수많은 생물이 멸종했다는 설이다. 모두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고환설과 약물설은 검증을 할 수 없는 반면에 재난설은 검증될 수 있고 반증도 가능하다. 유효한 과학적 가설로서의 자격요건이다. 그렇게 과학적 탐구의 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는 과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훌륭한 수련장이다.

 

13.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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