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거물들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20세기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의 <대리석 절벽 위에서>(문학과지성사, 2013)와 19세기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베르가의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문학동네, 2013)이다.

 

 

먼저 파시스트적 경향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작가 윙거. 10년전 러시아에 있을 때 가장 특이하게 생각했던 게 윙거의 작품 다수가 러시아어로 번역돼 있었던 것인데(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의 책들이 다수 번역된 것과 함께 눈길을 끄는 사실이었다), 1885년생인 그가 1998년 만 103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됐다. 지젝을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언급이 돼 그의 '전쟁문학'을 읽고 싶었는데, 기대했던 <강철 폭풍>은 아직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대리석 절벽 위에서>가 나름대로 갈증은 해소시켜줄 듯싶다. 한편으론 나치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고도 하니까 윙거에 대한 평가를 교정해줄 것도 같다(하긴 1세기를 넘게 산 인물이니 다면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작가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중산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세에 김나지움 학생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했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6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곧이어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철십자 훈장과 푸르르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독일의 패전 뒤에도 군에 머물며 전쟁의 경험을 담은 <강철 폭풍><내적 체험으로서의 전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제대한 뒤에는 하노버 대학 · 라이프치히 대학 · 나폴리 대학에서 동물학과 철학을 수학했다. 그는 일생 동안 곤충에 심취했고 약 3만 마리의 곤충을 수집했는데, 곤충 가운데 여러 종에 그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윙거는 언제나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는데, 그의 작품은 전쟁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하고 나치즘에 접근하는 등 보수 혁명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치당원이었던 적도 없고 나치 체제 인사나 반체제 인사를 가리지 않고 교류했다. 또한 그의 대표작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나치의 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중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윙거의 작품들은 전쟁 말기에는 나치에 의해, 종전 직후에는 영국 점령군에 의해 잠시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번에 나온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160쪽 분량의 짧은 작품이다. 작품 소개를 간추리면 이렇다.

전쟁을 찬미하고 나치 집권에 일조하는 글을 썼다고 비난받는 동시에, 나치에 비판적인 작가로 간주되기도 하는 에른스트 윙거의 대표작. 지식인 한 명 한 명에게 정치적 결단과 결정이 요구되는 시기를 살며 민감한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던 동시에 독보적인 미학적 성과를 보여준 에른스트 윙거는 독일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윙거는 세계적 명성에 있어서도 이미 오래 전에 20세기 독일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혔지만,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출간되기는 이번에 처음이다. 1939년에 발표한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나치 정권이 주도한 폭력 시대의 역사적 반성을 담았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윙거는 '산림감독원장'이 히틀러 한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 독재자의 한 전형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 윙거의 전모를 파악하기엔 아직 부족한 상태이지만, 나름대로 '첫 걸음'을 의미는 가질 수 있겠다. 독일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서 그의 사상과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저작이 더 소개되길 기대한다.

 

 

우리에겐 생소한 조반니 베르가(1840-1922)의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도 '진실주의 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는 작품. 작가나 '진실주의'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겠다.

19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작가, 조반니 베르가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베르가는 낭만주의풍의 소설이 유행하던 시기,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의 삶을 오롯이 품어냄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사에 '진실주의'라는 새 기점을 확립했다.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은 진실주의 문학의 정수라는 평을 받는 베르가의 대표작으로,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던 한 가족의 몰락과 비극을 다룬다.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에서 영향을 받아 구상한 '패배자들' 총서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주어진 신분과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 탓에 인간은 궁극적으로 운명에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만초니의 <약혼자들>에 비견되는 이탈리아 문학의 고전이며, 1948년에는 영화계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 의해 <흔들리는 대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 <흔들리는 대지>의 원작이라고 하니까 좀더 와 닿는데, 영화도 같이 구해봐야겠다(마침 초특가판의 DVD가 나와 있다).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문학과지성사, 2004)는 어느새 일부 품절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이렇듯 문제가 생긴다. 책을 구할 수 있는 루트를 알아봐야겠다...

 

14.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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