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인쇄일이 2014년으로 찍힌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올해의 마지막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세밑이라 평소보다는 책이 덜 나오고 있는데, 그럼에도 세 명을 꼽는 건 어렵지 않다. 인문사회분야의 국내 저자로만 꼽았다.

 

 

 

먼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 2013)로 출판계에서 화제를 모았던(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내긴 했지만 저자로서는 올해 '발견'됐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신간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 2013). 사계절출판사에서는 같은 저자의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2011)를 출간한 적이 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어떤 책인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펴낸 노명우 교수가, 이번엔 세속을 살아가는 사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를 고민하며 쓴 책이다.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 교수로서 스스로가 평범한 세속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누구나 살면서 겪는 세상 경험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집하고 궁리하며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시도했다.

주제뿐 아니라 사회학 에세이의 가능성을 점쳐보게 해주는 책이겠다.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류신 교수도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민음사, 2013)로 저자로서 변신을 시도했다.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이 부제인데,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제목이 시사하듯이 벤야민의 미완의 프로젝트를 흉내 낸 것이기도 하다. 어떤 책인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모티프를 얻은 독특한 서울 탐방기. 저자는 80년 전 경성 시내를 주유했던 구보 씨를 2013년 지금의 서울 거리로 호출해 서울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탐사하며, 소설, 시, 회화, 조각, 대중가요 등의 문화 텍스트를 시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풍성하게 인용해 벤야민식 도시 읽기를 시도한다.

이 참에 드는 생각은 이러한 작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이 시도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시도 속에서, 필자난을 겪고 있는 인문분야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

 

 

시인이자 동양철학자 최재목 교수의 유럽 견문록도 출간됐다.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책세상, 2013). 유교, 특히 왕양명 철학 전공자인 저자가 1년간 유럽 14개국을 둘러보며 보고 느낀 바를 적은 책이다. 부제는 '최재목 교수의 유랑, 상상, 인문학'.

저자는 유럽을 거닐며 창의적인 지식과 정보를 얻고, 동양의 눈으로 서양을 바라보는 가운데 타성에 젖은 학문적 정체성을 되돌아본다. 동양 밖으로 나와서야 연구자로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비로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나아가 유럽 여러 나라들의 지리적 조건과 풍경에 대한 단상,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 철학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가 낸 길을 따라 동양과 서양, 이성과 감성, 학문과 예술,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감수성이 자유롭게 오가며 더 넓은 인식의 지평으로 확장되는 여행의 인문학이다.

곧 맞을 신년 초에 특별한 여행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면, '대역'으로 고려해봄직한 책이다...

 

13. 12. 27. 

 

 

 

P.S. 개인적으론 여행에 대한 특별한 욕심을 갖고 있진 않지만, 기회가 되면 핀란드에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전적으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덕분이다. 못 챙겨본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몇 편을 구해서 보는 걸로 신년 맞이 호사를 대신해야겠다. <죄와 벌>(1983)이 출시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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