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고전'은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휴머니스트, 2013)다. <파운틴헤드>(휴머니스트, 2011)가 재번역된 데 이어서 대표작 <아틀라스>도 다시 번역돼 나왔다. 5권짜리 민음사판은 절판된 지 오래됐는데, 이번에 나온 건 3권짜리다. 모양새가 더 나아졌다. 미국식 자본주의 이상을 웅변하고 있는 이 소설에 대해선 예전에 다룬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3405937), 이제 비로소 읽어볼 수 있게 됐다. 어떤 소설인가.

 

1991년 미국 의회 도서관과 '이 달의 책 클럽'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아틀라스>가 성경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미국 객관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작가 에인 랜드의 정수를 담은 지성적 소설로, 가상의 '민중 국가'인 미국을 배경으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진짜 주역은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한국인의 '종미주의'를 얘기하곤 하지만, 나는 늘 외견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식 사고방식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들이 국내에서 별로 읽히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다(대신에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 에인 랜드의 <아틀라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혁명과 현실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소설이 (레닌이 다섯 번이나 읽었다고 술회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1863)라면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가장 잘 해명하고 있는 책이 바로 <아틀라스>다(이 경우에도 물론 소설적 이상과 미국의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에인 랜드는 1905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26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이었다(본명은 알리사 로젠바움). 

 

 

국내에선 <마천루>(광장, 1988)라고 번역된 적도 있는 <파운틴헤드>(1943)로 처음 명성을 얻고, 이어서 대표작 <아틀라스>(1957)로 미국 자본주의의 대모가 된다. 소설로만 만족하지 않아서 <철학><낭만주의 선언><자본주의의 이상> 등의 철학서도 펴내는데, 국내에도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자유기업센터, 1998), <낭만주의 선언>(열림원, 2005), <자본주의의 이상>(자유기업센터, 1998)으로 소개됐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한국의 자본주의자들은 에인 랜드를 읽지 않거나 에인 랜드의 생각에는 무관심하다고 할까. 그러니 <아틀라스>를 읽는 건 사실 한국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미국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자본주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공산당 선언>에 견줄 만한 게 자본주의에 있다면 그건 에인 랜드의 책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정치 이념으로 자유지상주의를 강령하게 옹호하는 머리 로스바드의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자유지선주의 선언>(한국문화사, 2013)도 최근 번역돼 나왔다. 흔히 자유방임주의, 자유지상주의라 번역되는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역자들은 '자유지선주의'라고 새롭게 옮겼다('자유지상주의'와 다른 의미가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유지선주의'는 아직 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은 용어다). 어떤 책인가.

오늘날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자유지선주의 사상이 있으나 로스바드 주의(Rothbardianism)는, 심지어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그 지적인 무게, 주요 사상과 양심, 전략 및 도덕의 핵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지켜왔고,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 이유는 머리 로스바드(Murray Rothbard)가 현대 자유지선주의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창한 현대의 자유지선주의는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틀은 물론 국가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그들의 중앙집권적 계획에서 즉시 벗어날 것을 제안한 하나의 정치적-이념적 체제라는 데 있다. 자유지선주의는 국가권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 대안 사상이다.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을 보면 최근의 사상적 흐름은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규제나 간섭보다 우위에 두려는 쪽으로 가는 듯싶다(공화주의에서 자유주의 내지 자유지상주의로). 동성 결혼의 합법화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오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유타주의 연방 지법에서 일부다처제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사자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혼이라면 국가가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동성 결혼은 허용하고 일부다처제는 금지한다는 건 법리상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일까...

 

13. 12. 15.

 

P.S.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틀라스>는 러시아에서도 3권짜리로 출간돼 있다. 영어본은 1168쪽짜리 단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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