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일본어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가와이이'다('가와이'로 알았는데, '이'가 장음인가 보다). 귀엽다는 뜻(언젠가 한 뒷풀이 자리에서 김애란 작가에게 듣고 '가와이이'란 말의 쓰임새를 알았다). 신간 가운데 요모타 이누히코의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은 바로 그 '가와이이' 현상에 초점을 맞춘 일본문화 비평서다. '세계를 제패한 일본 ‘귀요미’ 미학의 이데올로기'가 부제. 놀랍게도 일본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첫 책이라고 한다. 소개는 이렇다.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가 말했듯이 “그토록 중요한 주제인데도 아직까지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가와이이’ 현상을 최초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소녀 문화 연구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가와이이’를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연구사적 의의도 갖고 있는 것이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일본 팝컬처 전반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힌트를 던져 줄 것이라 기대한다.

비단 일본문화 비평서로서만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가와이이’라는 말은 이미, 오늘의 일본과 일본 문화를 읽어내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소비문화의 중요한 속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일반적 현상에 대한 분석으로도 의미가 있는 셈.

 

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사가 겸 평론가'라고 소개되는데, 이름은 입에 익지 않았지만 검색해보니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소명출판, 2011)의 저자다. 장바구니에 장기 체류중인 책인데, 가격이 만만찮아서 보류중이지만 언젠가 품절되기 전에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 외 <라블레의 아이들>(씨네21북스, 2012; 빨간머리, 2009)란 책도 나와 있는데, 무슨 책인가 궁금해 오전에 주문해서 받았다. 내용은 '천재들의 식탁'이란 부제 그대로다.

저자는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남긴 엄청난 양의 자료를 샅샅이 뒤져,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그대로 재현해 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카레 전골’, 문학 평론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니쿠 프라이’,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산채 요리’처럼 요리를 함께 먹던 사람들끼리의 연대감과 그 음식을 먹던 당시의 상황의 그리움이 담긴 음식에서부터 이탈리아 미래파의 독특하면서도 유쾌한 요리, 라프카디오 헌과 폴 볼스처럼 개인의 역사적 삶의 습곡 속에서 끄집어낸 고국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는 요리, <연인>을 쓴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녀 시절의 식민지에서의 체험을 통해 익힌 맛의 감각과 그 지속적인 맛의 기억,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인생의 덧칠을 다 빼버린 듯한 담백함 속에 느껴지는 ‘텃밭 채소 샐러드’, 혁명적인 삶을 살다간 이사도라 던컨의 ‘캐비아 포식’, 탐미파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감잎 초밥’과 어둠 속에서 먹는 ‘화퇴백채’라는 요리와 그 행위가 주는 기묘한 에로티시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덴푸라 예찬’...

소개가 한참 더 이어지는 걸 끊었다. 이 정도면 '잡학다식'의 한 표본이다. 여하튼 이런 예상 밖의 책들은 별미다. 정색하는 책들만 읽다가 막힌 숨통을 틔어주기에.

 

 

이누히코의 책은 생각보다 많이 소개돼 있는데, 아쉽게도 영화 관련서들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일본영화의 래디컬한 의지>의 전사로 읽을 수 있는 <일본영화의 이해>(현암사, 2001)를 구할 수 없는 게 특히 유감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세계>(문화학교서울, 2003)과 <만화원론>(시공사, 2000)도 다시 통할 수 있지 않을까? 뒤늦게 발견한 독자들을 배려해서라도 복간되기를 기대한다...

 

13.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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