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늦게 귀가해 간식을 먹으며 들춰본 책은 이유경의, 아니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다시봄, 2013)이다. 주말에 받은 책인데, 대개 서평집의 용도가 그렇듯이, 아무쪽이나 넘겨서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비교해보거나 안 읽은 책에 대한 정보를 챙긴다. 몇 페이지 안 넘겨서 발견한 책이 앨런 베넷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문학동네, 2010)다. 수년 전에 나왔건만 뒤늦게 '발견'한다. 가히 '오늘의 발견'이다. 저자의 책이 한권밖에 소개되지 않았으니 '이주의 발견'이라고 해도 되겠다.  

 

 

영국 여왕이 뒤늦게 독서에 재미를 붙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인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 찾아봤지만 그렇지는 않다(여왕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와 혼동하고 있나 보다). 그래도 설정은 아주 흥미롭다. 구미를 당긴다. 다락방님이 인용한 대목.

"책을 읽고 마음에 든 작가가 생겼는데, 그 작가가 쓴 책이 그 한 권만 있는 게 아니라, 알고 보니 적어도 열 권은 넘게 있는 거예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기억에, 여왕에게는 그토록 '즐거운' 일이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밑줄긋는 남자>(열린책들)의 주인공 콩스탕스(스물다섯 살의 처녀인 그녀는 지극히 '일반적인 독자'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 열 권이 넘더라도 한권씩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엔 바닥이 날 것이기에. 기억이 맞다면, 콩스탕스에게 그 작가는 <자기 앞의 생>과 <가면의 생>의 저자 로맹 가리였다(물론 <자기 앞의 생>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와 일반적인 독자의 경험으로 나뉘는 듯싶지만, 내 생각에 그 즐거움 혹은 아쉬움이 '독서 공감'이다. 여전히 읽을 책이 남아 있기에 즐겁고, 그 목록이 하나씩 줄어가기에 아쉽다. 방법은 좋아하는 작가를 여럿 두는 것일까. 애인을 여럿 두듯이.  

 

나대로의 술수이지만,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이건 쿤데라건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몇 권은 안 읽고 남겨놓고 있다. 시한부 인생이라도 통보를 받는다면, 부랴부랴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안 읽은 책을 여유분으로 갖고 싶은 것이다. 읽고 싶어도 다 읽을 수 없는 책들이지만, 또 한편으론 그렇게 언제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을 굳이 읽지 않은 책으로 모셔놓는다. 이 정도는 다들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1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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