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카테고리의 글을 적는다. 올해 수능을 본 조카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보고 와서다. 같이 본 아이의 반응은 재미없다는 거였지만(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우리를 포함 다섯이었다) 소문대로 단연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수작이다(내겐 <관상>이나 <설국영화>보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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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를 찾아보니 '잉여'를 다룬 영화들이 올해 더 있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610299.html). 이호재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장현상의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등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영화라고. 다른 두 편은 보지 못했지만, <잉투기>는 '잉여'가 무엇인지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장편 데뷔작인 듯싶은데, 놀라운 재능이다(우리가 매년 볼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영화의 발단은 이렇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태식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했던 ‘젖존슨’에게 현실에서 급습을 당한다. 흠씬 두들겨 맞는 모습이 인터넷에 퍼져 망신을 당한 태식은 젖존슨에게 복수하기 위해 종합격투기를 배우러 갔다가 관장의 조카 영자를 만난다. 인터넷 먹방(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에 빠진 영자는 태식을 도와 젖존슨 찾기에 나선다. 태식은 인터넷 잉여들이 실제 격투를 벌이는 ‘잉투기’ 대회에 대해 알게 되고, 이 대회에서 젖존슨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잉여'는 출판에서도 올해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매체의 차이는 있지만 잉여 영화들의 선전에 대응하자면 잉여 담론도 더 분발해야겠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젊은 감독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잉여는 주요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코미디 프로그램(<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과 웹툰(<미생>), 이말년 만화가의 소재가 되고, 잉여를 학문적으로 분석한 책(<속물과 잉여>, <잉여사회>)까지 나왔다. 세 감독들은 이를 ‘신기하고 재밌는 현상’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잉여 문화를 소비하고, 잉여짓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 주류도 많아요. 높은 연봉에 번쩍번쩍한 차를 타도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거죠. 잉여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대리만족 하는 거예요.”(이호재) “잉여들은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 ‘병맛짓’(어이없고 맥락없는 짓)을 하고 더 수준 높은(?) 잉여짓에 감탄하며 무릎 꿇어요. 주류는 이걸 잠시 소비하거나 심지어 돈벌이로 이용하죠.”(장현상)

 

잉여를 소비하는 주류를 비웃지만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주류(대기업)의 시스템에 편입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게 왜 문제가 되죠? 우리는 주류의 시스템을 이용해 ‘잉여짓’을 하는 건데…. 전 이걸 ‘잉여들의 역습’이라 부르고 싶어요. 하하하.”(이호재)  

 

‘영화’라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감독님’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제 잉여가 아닌 것은 아닐까? 진짜 잉여들이 보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이호재 감독은 자기 영화가 잉여들에게 ‘저런 놈도 뭔가 해냈는데, 넌 뭐하냐?’는 식의 또다른 ‘억압’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호의적’이 된 남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단다. “영화 찍은 뒤에도 전 너무 게을러 몇 달 동안 일을 하나도 안 했어요. 웃겨요. 전 변한 게 없는데, 영화 찍기 전엔 손가락질하더니 이젠 대단하대요.”

 

장현상 감독이 말을 이어받았다. “잉여는 탈출하거나 벗어나야 할 영역이 아녜요. 이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 나쁜 놈은 안 되겠지만, 계속 이상한 놈(잉여)으로 살 것 같아요.” 엄태화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이 좀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될 수는 있겠다 싶단다. 사람답게 사는 게 뭐냐고 물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밥은 좀 안 얻어먹는 것? 히히.” (한겨레) 

1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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