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외르크 치틀라우'란 이름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는가? 나는 한권도 없어서 지난주에 나온 <너드>(작은씨앗, 2013)란 책을 '이주의 발견'이라고 적을 뻔했다. 하지만, 공저를 포함하면 이미 무려 9권의 책이 소개된 저자다. 안경 밑이 어둡다고 할까. 그중엔 이름을 알고 있는 책도 들어 있다.


소개로는 "철학, 사회학, 스포츠 의학을 공부하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거쳐 프리랜서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돼 있는데, 국내에 번역된 것만 해도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다. 아니나 다를까 " 과학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철학, 심리학, 의학, 식품영양학 등의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여 다수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국내에도 진화생물학과 의학, 식품영양학 관련서들이 번역돼 있고, 놀랍게도 간디에 관한 책도 나와 있다.


독일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저자인지는 모르겠지만(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 저술한 책이 60권이 넘어간다) 잡학다식으로는 손꼽을 만하다. <너드>(2011)는 그의 신간에 속한다.
'너드'란 말은 이 책 덕분에 처음 알게 됐는데, '세상의 비웃음을 받던 아웃사이더, 세상을 비웃다!'란 부제를 고려하면 '세상의 비웃음을 받던 아웃사이더'가 바로 '너드'다. 원래 사전적인 의미는 '컴퓨터광'을 가리키는 걸로 돼 있지만(저자에 의하면 컴퓨터 시대가 너드의 최고 전성기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이 너드들이다), 저자의 주된 착상은 그 역사가 호모 사피엔스만큼이나 오래 됐다는 데 있다. 무슨 말인가.
너드는 인간이 생명 유지와 종족 보존만을 목적으로 원시적인 수렵과 채집 생활만 영위하던 데에서 벗어나 무리의 독특한 구성원들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도록 충분한 기회를 허락했던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너드는 세계사에서 비교적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에 특히 자주 등장한다.(9쪽)
'너드의 간략한 세계사' 기술이 가능한 건 그 때문이다. 저자는 첫 전성기로 고대 그리스 시대를 꼽고, 이어서 철학계(아퀴나스와 칸트, 니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와 과학계(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퀴리 부부), 문화예술계(프랭크 자파,조지 오웰, 앤디 워홀)의 위대한 너드들의 역사를 짚은 다음에 우리시대의 너드들을 소개한다. 짐짓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말장난처럼 보이는, 거꾸로 헛소리 같지만 뭔가 말이 되는, 저자의 너드 이야기가 제법 뒤늦긴 했어도 '발견'에 값한다. 그러고 보니 저자 자신이 바로 너드가 아닌가 싶다. "허구한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매달려 분주한" 게 너드의 특징이라면.
너드에 관한 책을 쓴다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너드가 뭔지 알았어. 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 같던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책이 되니?" 물론 책이 됐던 것이고, 이렇게 한국어로도 읽고 있다...
1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