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책&(424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포스트휴먼'이다.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모아보았다.
책&(13년 11월호) 포스트휴먼
필멸과 불멸은 인간과 신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불멸을 꿈꿔왔지만 그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유한성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하지만 생명연장 기술의 발달, 그리고 신체와 기계의 결합 가능성은 그러한 운명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서 죽음 너머의 인간, 신체적 한계 너머의 인간이 가시화되고 있다. 오랜 진화의 산물이기도 한 현재 인간의 조건을 넘어선 인간을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른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들. 포스트휴먼 시대는 어떻게 도래하는가? 포스트휴먼도 인간인가? 포스트휴먼은 어떤 문제를 사유하게 될까? 궁금한 자가 책을 펼치는 법이다. 이번 달에는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을 다룬 책들을 살펴보자.
가장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건 프랑스의 미래학자 도미니크 바뱅의 『포스트휴먼과의 만남』이다. ‘포스트휴먼 1세대를 위한 안내서’를 자임한 책으로, 저자는 포스트데스(Post-Death), 포스트보디(Post-Body), 포스트에고(Post-Ego), 포스트릴레이션(Post-Relation), 포스트리얼리티(Post-Reality)라는 다섯 가지 범주를 통해서 포스트휴먼의 실현가능성을 검토하고 전망한다. 곧 우리가 죽음을 넘어서게 될 것이고, 신체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자아관이 변화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관계의 양상과 아예 ‘현실’ 자체가 전혀 다르게 구성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포스트휴먼에 대한 통념적인 이해에 부합한다고 할까.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일부 미래학자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최초의 인간이 우리 중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나노기술의 발달은 적혈구보다 크기가 작고 모세혈관보다는 가는 로봇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 로봇이 인체에 들어가서 원격조정자치의 지시를 받아 특정 암세포를 제거하는 식의 나노의학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의학의 새로운 혁명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얻게 될 불멸성은 자칫 환경적 재앙뿐 아니라 사회적 재앙이 될 가능성도 크다. 첨단기술은 너무 비싼 경비 때문에 극소수의 경제적 상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더불어 인구 과잉 문제를 떠안게 될 포스트휴먼은 결국 우주 식민지를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다. 포스트휴먼의 삶도 녹녹치 않아 보인다.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훨씬 정교한 이론적 탐색과 비평은 캐서린 헤일스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에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마음의 아이들』에서 인간 의식을 컴퓨터로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로봇 외과의사가 두개골 흡인술을 통해 정보를 읽어내고 그것을 컴퓨터로 저장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신체와 정신이 분리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보가 신체라는 기반을 갖지 않는다면 컴퓨터와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사이보그에 대한 관심을 거기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그의 기본 입장은 우리가 포스트휴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이보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포스트휴먼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특징은 비생물적 요소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때 구성되는 주체성은 사이버네틱스나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에서처럼 신체화를 경시하거나 말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한다. 저자가 꿈꾸는 포스트휴먼은 “무한한 힘과 탈신체화된 불멸이라는 환상에 미혹되지 않고 정보기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포스트휴먼”이다. 포스트휴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도 실상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당연한 일이지만, 포스트휴먼의 가능성과 현실화에 대한 긍정적 시각 못지않게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우리의 포스트휴먼 미래』에서 우생학의 귀환을 불러오는 생명공학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도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에서 인간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편에 선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인류가 새로운 디지털 종족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낙관하며 환호한다. 슈테판 헤어브레히터의 『포스트휴머니즘』은 이 두 입장을 중재한다. 저자는 포스트휴먼을 “인류화 과정에서 배척되었던 모든 정신적인 것을 포괄하고, 인류의 모든 ‘다른 것’을 포함하자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다른 것’에는 기계뿐만 아니라 동물, 신, 악마, 괴물 등도 포함된다.
포스트휴머니즘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바라보면서 그 새로움과 급진성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를 저자는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 포스트휴머니즘의 다양한 쟁점에 관해서는 이화인문과학원에서 펴낸 『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도 참고할 수 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인간존재론의 문제, 윤리적 쟁점들, 그리고 예술 속에 나타난 포스트휴먼의 양상들을 살펴본 논문 모음집이다. 포스트휴머니즘 관련서는 모두 학술서 범주에 속하는데, 포스트휴먼의 중요 쟁점과 이슈를 다룬 교양서들도 더 나오길 기대한다.
13.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