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도 손에 들고 후기와 서문을 먼저 읽어보았다. '일베의 사상'이란 제목에서도 연상이 되지만, 실제로 마루먀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을 참조했다고. 거기에 일본의 사회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도 이론적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의 작업은 비단 일베의 사상에 대한 분석으로서뿐 아니라 한국사회 징후 독법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존재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연약하고 재미없는 인간들을 철저하게 구축한 자립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 나아가 '세계를 동물화하라'는 정언명령이 바로 일베의 공격적인 유머코드의 배후에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16쪽)는 서문의 주장과 "나는 자살로도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광주항쟁 때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조롱을 거침없이 해왔던 일베 유저들이 성재기의 죽음을 계기로 별안간 연민의식에 빠져서 침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재기의 죽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을 보면서 일베도 실제로는 생각만큼 그렇게 아방가르드한 집단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268쪽)는 후기 사이의 흥미로운 편차가 눈길을 끌어서 몇자 적으려다가 독후로 미루고(하지만 당장은 독서의 여유가 없다) 저자 인터뷰 기사를 찾았다. 경향신문의 기사가 요긴한 도움이 되기에 일부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91545001&code=940100).

노알라,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민주화 같은 일베의 혐오스러운 용어들이 한국 사회를 자극했다.

일베에는 지향점이 없다. 젊은이들의 혐오문화가 현실에서 좌절한 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나타난 것이다. 삐뚤어진 인정 욕구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일베 같은 집단에서 정치적인 프로그램이나 강령이 나올 리 없다. 이들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타인이 불쾌하도록 도발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 나오면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인터넷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론장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있다.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는 것이 일베의 멘탈리티다.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갖는다면 파시즘에 가깝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한가한 분석이 있을 수 없다.”

일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이들을 인터넷에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베를 어떻게 한다? 이것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일베를 사회적 징후로 보고 분석하려 했다. 일베는 사양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일베가 사라지더라도 이들의 혐오 방식을 잇는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다. 일베는 인터넷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영웅심리가 표출된 것이다.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젊은이들 자신의 책임도 있긴 있다. 일베 자체를 어떻게 한다기보다,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혐오문화가)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 있다.”

책 제목이 <일베의 사상>이다. 일베에 굳이 사상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쓰레기에도 사상이 있을 수 있다. <일베의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심각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일베의 사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베를 지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베를 큰 의미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거나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일베와 촛불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게다가 일베는 촛불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분석했다. 진보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양쪽이 극단이고, 극단은 통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일베가 촛불의 정서에서 일탈해 나온 존재라는 이야기다. 촛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일베가 나왔다고 본다. 진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아비판이다. 일베는 진보논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롱문화를 수용했다. 예전에 그런 문화에 발을 들였던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진보좌파가 잘못했으니까 일베가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하기보다, 과거에 뭘 했는지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되짚어본다는 의미다.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 시대를 돌이켜본다는 의미다.”

일베가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책이 출간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일베로부터 소위 ‘민주화’라는 것을 당했다. 예전에 내 신상을 털거나 모욕을 주면 화가 났다. 지금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진부했다. 이제 일베식 도발이 신선함을 잃었다. 일베의 선정성이 익숙하게 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 초기 국정원의 입장을 옹호하다 최근 선거개입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조용해진 느낌이 있다.”

책의 부제는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인데, 벌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니 '탄생'이란 말이 무색하다. 곧 다른 방식으로 재등장하게 될까...

 

1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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