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두번째 주말이 코앞이다. 부랴부랴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지난 달부터 선정 범주가 달라졌는데, 다섯 개 분야의 책을 고르고 내 맘대로 고른 주제 하나를 덧붙인다.

 

 

 

 

1. 문학예술

 

정이현 작가가 추천한 책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문학동네, 2013)다(김연수 작가도 추천했군). 이미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군더더기 설명은 필요없겠다. 정이현 작가의 평은 이렇다.

1999년 아쿠다가와상 수상작인 <일식>으로 '마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히라노 게이치로는 등단 십 년 만의 이 작품에서 사람은 왜 사람을 죽이는가, 사람은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가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 깊이 천착하여 집요하도록 찬찬히 파헤쳐 나간다. <결괴>는 <일식>, <달>, <장송>의 로맨틱 3부작 이후 한동안 단편 창작에 집중했던 그의 작품세계에 새로운 방점을 찍은 대작 장편소설이며, 특유의 현학적인 필치와 한층 짙어진 문제의식을 심도 있게 파헤쳐간 수작이다.

나는 아직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지만(<일식>만 구입했던 듯하다) 만약 손에 든다면 가장 먼저 읽게 될 듯싶다.

 

 

 

내가 고른 예술분야 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기관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영화 같은 시간>(이음, 2013)이다. "허진호, 임상수, 봉준호, 최동훈 등 유수의 감독들을 배출하며 ‘한국의 영화 사관학교’라고 불린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인들이 기관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엮은 <영화 같은 시간>은 그들의 학교이자 배움의 현장이었던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풀어놓는다." 한국영화 교육과 제작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책. 한국영화 관련서가 드문 편이어서 눈에 띄었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의 실제 장편영화 제작과정을 기록한 <영화의 꿈을 향해 쏴라>(씨네21북스, 2012). '우리는 어떻게 저예산 장편영화를 촬영했나'가 부제다. 아울러 "현재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일궈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여덟 명의 기술 스태프들에 관한 이야기", <우리시대 영화장인>(열화당, 2013)도 참고해볼 만하다. 대략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별해줄 만한 책들이다.  

 

 

한국문학 작품도 더 얹자면, 알라디너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는 황정은의 신작 장편 <야만적인 앨리스씨>(문학동네, 2013), 백가흠의 두번째 장편소설 <향>(문학과지성사, 2013), 그리고 정태언 작가의 소설집 <무엇을 할 것인가>(강, 2013). <무엇을 할 것인가>는 물론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반향하는 제목이다. 러시아 유학파 작가답게 러시아문학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의 책으론 크리스틴 스웬슨의 <가장 오래된 교양>(사월의책, 2013)과 차장섭의 <미얀마>(역사공간, 2013)가 추천됐다. <가장 오래된 교양>은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고, <미얀마>는 제목 그대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 유적지를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인문교양서".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현지를 다섯 번이나 답사하면서 사진을 찍고 미얀마와 관련된 자료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는 평이다. 연초에 나온 <아웅산 수치 평전>(왕의서재, 2013)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 얹자면 요즘 자주 출간되고 있는 퇴계 관련서들도 읽어볼 만하다. '도산(서당)에서 이것저것을 생각나는 대로 시로 읊다'는 뜻의 <도산잡영>(연암서가, 2013)이 최근에 나왔고, 이상하의 <퇴계생각>(글항아리, 2013)과 김병일의 <퇴계처럼>(글항아리, 2012)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기획한 같은 시리즈의 책이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선 레이먼드 조의 <관계의 힘>(한국경제신문, 2013)이 추천됐다. 제목은 최근의 트렌드를 보여주는데, 얀 칩세이스 등의 <관찰의 힘>(위너스북, 2013),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갤리온, 2012)과 함께 알라딘에서는 '나를 바꾸는 힘 3종 세트'로 묶여 있기도 하다.

 

 

그렇게 묶을 수 있는 책으론 '아파트 3종 세트'도 있다. 바로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 2013),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현암사, 2013),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은 올해의 기억할 만한 3종 세트다. 적어도 아파트란 주제에 관해서는 읽고 토론할 거리가 마련됐다고 할까.

 

 

 

4. 자연과학

 

이한음 위원이 추천한 책은 황선도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 2013)다. 추석 연휴엔가 언급한 적이 있는 책. 같이 읽어볼 만한 과학서로는 이한음 위원이 옮긴 책으로 윌 벤슨의 <식물의 왕국>(까치, 2013)과 일레인 폭스의 <즐거운 뇌, 우울한 뇌>(알에치코리아, 2013)도 손에 들어볼 만하다. 신뢰할 만한 역자의 번역은 고르는 수고도 덜어준다.

 

 

 

생태 관련서도 보태고 싶은데, 신승철 교수의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서해문집, 2013)도 생태학과 철학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는 책으로 눈길을 끈다.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홉스, 니체, 푸코, 프로이트, 맑스 등 철학사의 주요 철학자들부터 스피노자, 피터 싱어, 머레이 북친, 들뢰즈·가타리 등의 생태주의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주요 사상과 개념들 속에서 ‘생태’의 키워드를 찾아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이시 히로유키의 <세계문학 속 지구환경 이야기1,2>(사이언스북스, 2013)도 생태학과 문학의 만남을 다룬다. 소개에 따르면, "30년 넘게 환경 전문 기자로 활약해 온 이시 히로유키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재해와 파괴의 현장에서 얻은 그만의 눈으로 본 세계 문학들을 모았다. 이 책에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출애굽기」를 비롯해 <레 미제라블>과 <암흑의 핵심> 등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작품 24편이 등장하고 있다."

 

 

5. 실용일반

 

이하경 위원이 추천한 책은 조승연의 <소녀, 적절기술을 탐하다>(뜨인돌, 2013)와 클레어 콕 스타키의 <인포그래픽 세계>(마리북스, 2013), 두 권이다. '인포그래픽'은 말 그대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그림. 과문했는데, 이 분야에도 관련서들이 여럿 나와 있다.

 

 

 

0. 병자호란

 

역사분야의 책이 빠진 듯싶어서,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병자호란'으로 정했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1,2>(푸른역사, 2013)이 최근에 출간됐기 때문인데, 같은 시기를 다룬 역사소설로 유하령의 <화냥년>(푸른역사, 2013)도 자매편 같은 책이다(알고 보니 두 저자가 부부라고 한다). 왜 지금 병자호란인가?

저자는 명과 청이라는 패권국 사이의 '조선'과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을 교차시킨다. 미국과 중국 중심의 G2(Group of 2)시대라 일컬어지는 현재, 그리고 G2세력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한반도. 두 강대국 간 갈등이 고조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병자호란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병자호란>에 보태어 이번에 완전판이 나온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작 <파운데이션>(황금가지, 2013)도 이달의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싶다(가능할까?). <병자호란>(역사)과 <파운데이션>(SF)의 겹쳐 읽기? 이유가 없지 않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인 만큼 최근의 '대한민국 쇠망사' 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13. 11. 07.

 

 

 

P.S. 11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걸작 <노인과 바다>를 고른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고,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댓 종이 넘는데, 여력이 있으면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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