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21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보통 3-4권의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막판에 한권을 골라 쓰게 되는데, 지난주에 낙착을 본 책이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중년의 발견>(청림출판, 2013)이었다. 면밀하게 읽어보려고 원서도 주문해 놓은 책이다. 바버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해나무, 2011)와 나란히 읽으면 더 효과적일 듯싶다...

 

 

 

시사IN(13. 11. 09) 변하니까 중년이다

 

인생의 사계절이라면 흔한 비유에 맞추면 가을은 중년의 계절이다. 여름과 겨울 사이, 한풀 꺾였지만 그렇다고 아직 한물간 건 아니다. 그렇다고 노년으로 가는 과도기이기만 한 걸까. 중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이런저런 생각에 손에 잡은 책이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중년의 발견>(청림출판)이다. 생물학자인 저자도 딱 중년에 접어들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놀라워하며 쓴 책이다


청년기나 노년기에는 없는 측면들 때문에 중년은 독특하며, 중년기의 변화는 갑작스럽다. 게다가 중년은 다른 생물종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현상이다. 수명이 늘어나 노년의 삶이 길어진 건 인류사에서 극히 최근에 일어난 이례적인 일이지만 중년은 그렇지 않다. 지구상에 살아온 인간은 유아기의 고비를 넘긴다면 대부분 마흔 살 넘게까지 살았고, 이것은 자연선택의 결과다. 곧 용도가 다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또다른 한 국면이라는 얘기다.

 

 


물론 ‘새로운 용도’는 예측 가능하다. 다른 생물종과 달리 인간은 유난히 미숙한 아기로 태어나 오랜 성장기를 겪는다. 따라서 다른 영장류에 비해 훨씬 많은 자원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며 이를 생물학에서는 ‘부양투자’라고 부른다. “자식이 너무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영향으로 우리가 번식을 멈추는 대신 자식에게 집중할 시간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번식 대신에 부양’이 중년이 떠안은 과제이자 존재 이유다.


그렇게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중년에 접어들면 흰머리가 생기고 주름살이 늘며 피부는 탄력을 잃게 되는가. 새 과제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란다. 진화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애자 커플의 출산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식을 낳을 가능성은 줄어들며 따라서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외모의 매력도 필요가 줄어든다. 불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는 우리의 몸은 외모에 그만큼 덜 신경을 쓰게 된다. 게다가 생식활동이 줄어듦에 따라 더 적은 에너지를 소모하게끔 몸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중년이 되면 기초대사량이 줄어든다. 살이 찌는 것은 그 때문이며, 이를 막으려면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때마다 하루기준 10칼로리씩 줄여서 섭취해야 한다.


좋은 소식도 있다. 보통의 상식과는 달리 중년의 뇌가 인지력이 가장 뛰어나다. 외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는 점차 느려지지만, 전반적으로 중년의 뇌는 좋은 기능을 유지한다. 중년의 뇌는 구술능력, 공간인식, 계산, 추리, 계획 세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청년기의 뇌를 앞선다. 저자는 그 이유를 더 많이, 더 열심히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서인 듯하다고 말한다. 즉 중년이 된다고 해서 더 영리해지거나 더 어리석어지는 건 아닐 테지만, 동일한 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신적 수단을 다양하게 바꿔본다는 데 강점이 있다. 그런 ‘다른 생각’은 중년이란 나이가 갖는 이중성 혹은 양면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진화적 유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의 충고는 우리가 거기에 속박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게 된 이후에도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젊은 외모를 유지하려 애쓰고, 늦둥이를 낳는 시도도 하고, 젊었을 때 못해봐서 아쉬운 짓도 한번 저질러보라.”

 

13.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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