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오전 강의를 다녀온 후 이불 속에 누워 있다가, 털고 일어나서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이주의 책'은 다소 중구난방이어서 천천히 고를 참이다. 인지도를 고려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공지영-이외수'라고 골라야 할 것 같지만, 굳이 군더더기 소개를 덧붙일 필요가 없기에 수전 손택과 오이겐 드레버만, 그리고 오쓰카 에이지를 골랐다.
먼저, 느낌으론 오랜만에 출간된 손택의 일기와 노트가 출간됐다. <인 아메리카>(이후, 2008)와 아들의 책, <어머니의 죽음>(이후, 2008)이 마지막이었다면 5년만이다. <다시 태어나다>(이후, 2013).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가 부제이고, 역시나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엮었다. 1964-1980년까지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육체에 매인 의식>도 번역될 듯싶다. 어떻게 나온 책인가.
수전 손택은 2004년 12월 28일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 전, 아들 데이비드 리프에게 넌지시 자신의 일기의 존재를 알렸다. 손택은 평생 백여 권이 넘는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는 친구나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너무나 솔직하다 못해 고통스러운 기록이었지만 리프는 “진실”과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손택의 뜻을 받들어 내밀한 이야기들을 회피하거나 윤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실었다.
사후에 시신이나 장기를 기증하는 행위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손택이 기증한 것은 그녀의 내면이고 영혼이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심층심리학자 오이겐 드레버만의 '그림동화 읽기' 속편이 출간됐다.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 읽기2>(교양인, 2013). 봄에 나온 전작을 흥미롭게 읽은 터라 주목한 저자인데, 독어본도 원래 두 권짜리인지, 아니면 번역본을 분권해서 펴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국내에 나온 '동화읽기' 책 가운데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 지난 봄에 내친 김에 그의 <어린왕자> 분석서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지식산업사, 1998)도 애써 구한 기억이 있다. 알라딘에서는 품절된 책이다.
그림동화에 대해서는 전집을 옮긴 <그림 형제 민담집>(현암사, 2012) 외에도 참고할 만한 책이 몇권 있다. 이성훈의 <그림형제>(건대출판부, 2011)과 김정철의 <그림형제의 동화>(경북대출판부, 2008) 등이다.
일본의 만화 원작자이자 서브컬처 평론가인 오쓰카 에이지의 창작입문서 두 권이 나왔다. <스토리 메이커>(북바이북, 2013)과 <캐럭터 소설 쓰는 법>(북바이북, 2013). <캐릭터 소설 쓰는 법>은 2005년에 나온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다중인격탐정 사이코>)으로 봐서는 탐정물과 사이코물이 주특기인 듯싶다. 어떤 용도의 책인가.
반복 훈련을 통해 '이야기의 문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한 책으로, 어린이 문학론, 오토 랑크의 영웅신화론, 조지프 캠벨의 단일신화론 등을 통해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설명한다. 그리고 2부에 실린 30개의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 이야기성을 필요로 하는 창작 활동에 사용 가능한 플롯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책의 말미에는 직접 복사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질문지 '스토리 메이커'를 첨부하여 실용성을 더했으며, 꼼꼼한 주석을 통해 일본 문화가 낯선 독자들을 배려했다.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은 작가 지망생을 비롯해 마음속에 품은 것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쓰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특히 문예창작과나 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에게 유익한 교재가 될 만하다.
한편 좀더 일반적인 소설작법 책으론 제임스 스콧 벨 등이 쓴 <소설쓰기의 모든 것>(다른, 2010-2012)가 있다. 다섯 권짜리니까 이 분야에선 가장 자세한 가이드북이다. 현장에서의 평가가 궁금하다...
13. 11.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