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원고 하나를 겨우 써보내고(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미 달이 바뀌었기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도 새로 골라놓아야 한다. 지난달에 많이 지각한 페이퍼를 올려놓았지만 이달의 페이퍼는 생각난 김에 올려놓는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좋은책선정위원회가 9월에 개편됐고, 선정분야도 달라졌다(선정 종수는 예전과 같다). 이달부터는 바뀐 카테고리에 따라 책을 고르기로 한다(유아아동 분야를 제외하면 다섯 분야다).
1. 문학예술
문학, 예술분야가 통합됐는데, 내가 고른 책은 캐서린 부의 <안나와디의 아이들>(반비, 2013)이고, 정이현 작가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현대문학, 2013)를 추천했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를 밀착취재한 매우 강렬한 르포르타주. 호세이니의 소설에 대해 정이현 작가는 "전작인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작가는 가난으로 인한 어린 남매의 생이별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그 주변 인간군상의 다양한 생애를 넓게 펼쳐 보인다."고 평했다.
여력이 있다면 10월에는 최근 타계한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여백, 2013)도 읽어보고 싶다. '상업소설'로 분류돼 폄하된 감이 있지만, 70년대 초반의 사회상과 연관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도 같이 볼까.
시집도 곁들이자면, 이병률 시인의 <눈사람 여관>(문학과지성사, 2013), 박주택 시인의 <또 하나의 지구가 필요할 때>(문학과지성사, 2013), 그리고 독문학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김재혁 시인의 <딴생각>(민음사, 2013) 등이 눈길을 끄는 신작 시집들이다.
2. 인문학
인문학 분야에선 김문식, 이진남 위원이 각각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휴머니스트, 2013)과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함께읽는책, 2013)를 추천했다. 예측가능한 추천으로 나도 페이퍼들에서 다룬 바 있는 책들이다. 음식문화사 쪽으로는 주영하 교수가 옮긴 <중국 음식문화사>(민음사, 2010)도 이번에 발견했다.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개인적으로는 바디우의 책 몇 권도 이달에는 읽어보려고 한다. 최근 방한을 계기로 여러 권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투사를 위한 철학>(오월의봄, 2013)과 <사유의 윤리>(길, 2013)은 엊그제 영역본도 구했다. <베케트에 대하여>(민음사, 2013)는 이번에 또 무대에 올려지는 산울림 극단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기 전에 읽어볼 참이다.
3. 사회과학
왕상한 위원장과 전형구 위원이 추천한 책은 롭 헹거벨트의 <훼손된 세상>(생각과사람들, 2013)이다. '우리의 소비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가 부제. 쓰레기(폐기물)로 점점 훼손돼 가는 지구 생태를 다룬 책들이 부쩍 늘고 있는데, 에드워드 흄즈의 <102톤의 물음>(낮은산, 2013)과 찰스 무어 등의 <플라스틱 바다>(미지북스, 2013)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오랜만에 교육 관련서도 보탠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의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9메디치미디어, 2013)는 <왜 학교는 불행한가>(메디치미디어, 2011)에 뒤이은 책으로 '교육 3부작'의 두번째 책이다. "‘참여정부’ 당시 교육혁신위원장을 맡아 교육혁신을 하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벽에 부딪혀 끝내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 교육혁신의 방향을 책에 담았다."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의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2013)와 같이 읽어볼 만하다.
4. 자연과학
이한음 위원이 추천한 책은 이지유의 <처음 읽는 지구의 역사>(휴머니스트, 2013)다. <처음 읽는 우주의 역사>(휴머니스트, 2012)의 속편격. "이 책은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에서부터 지구 속까지, 즉 천문학에서 지구과학까지를 다룬다. 저자는 과학자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일화들을 섞어 가면서 쉽고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기 시대의 낡은 세계관을 넘어서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잘 드러나도록 서술되어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중학생 정도면 읽어볼 수 있겠다.
말이 나온 김에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어쩌면 초등학생도) 다윈과 진화론 소개서들도 골라놓는다. 모두 최근에 나온 책들이다.
5. 실용일반
이하경 위원이 고른 책은 정재승 외, <백인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 2013)와 마이클 로이젠 등이 쓴 <우리 아이를 위한 내몸 사용설명서>(김영사, 2013)이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과학분야로도 분류되는 책.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왜 나오지 않을까란 화두를 풀기 위해 '집단지성'이 참여했다. 대표 저자인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트위터로 모집된 78명의 일반인이 매주 모여 진행한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 모두 과학 논문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야구를 좋아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기에 평소 생업에 종사하면서 넉 달 만에 외국 잡지에 제출할 만한 논문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쾌거라고나 할까? (이 논문의 저자는 무려 58명이다!)" <우리 아이를 위한 내몸 사용설명서>는 <내몸 사용설명서>(김영사, 2007)부터 시작된 '내몸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으로 '0세부터 6세까지 육아 가이드'이다.
0. 한국현대사 다시 보기
내가 고른 주제는 '한국현대사 다시 보기'다. 국문학과 한국사 전공 연구자들의 성과를 담은 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 관심이 가는 책 몇 권을 골랐다. '식민지 시기 파시즘과 시각 문화'를 주제로 한 한민주의 <권력의 도상학>(소명출판, 2013)과 '(영화의) 플롯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로, 이하나의 <'대한민국' 재건의 시대>(푸른역사, 2013), 그리고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부제인 권명아의 <음란과 혁명>(책세상, 2013) 등이다.
거기에 덧붙여 최근 '이승만주의자'를 자임하는 이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돼 취임하였기에 새삼 이승만 관련서를 몇 권 구했다. 서중석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역사비평사, 2007)은 기본서이고, 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역사비평사, 2005)는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에 토대한 것으로 공들인 연구서다. 김삼웅 선생의 <'독부' 이승만 평전>(책보세, 2012)은 신랄한 비판적 시각에서 쓰인 평전이다.
13. 10.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슬라보예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새물결, 2013)을 고른다. 생존 철학자의 저작이지만, 동시대의 고전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정본'이 될 만한 번역본이 오랜만에 나온 것도 환영의 이유가 된다.
'오래된' 고전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이달에 읽어보려고 한다. 두 종의 번역서와 원서를 오늘 주문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잔인한 작품'이라는 평판이 흥미를 끌었다. 소개에 따르면, "살인만 열네 번에 강간과 수족(手足) 절단, 생매장, 식인(食人) 등 온갖 끔찍한 잔혹 행위들이 등장하는 탓에 영국의 한 평론가는 '폭력의 카탈로그'라 칭했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복수극이라 했다. 셰익스피어 극작 경력의 가장 초기작 가운데 하나인 이 극은 그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비극 작품들의 단단한 씨앗과 어렴풋한 윤곽들을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