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의 <아름다움>(미진사, 2013)이 번역돼 나왔다. '스크러튼'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나름 철학서를 애독하는 독자라고 봐도 좋겠다.

 

 

한데, '스크러튼'보다는 '스크루턴'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Roger Scruton'이란 이름의 성이 그간에 '스크루턴' 혹은 '스크러턴', '스크러톤' 등으로 (대략 종잡을 수 없이) 옮겨졌기 때문이다. 알라딘에서도 각 이름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검색되기에 얼핏 서너 명의 저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동일인이다.

 

 

 

찾아보니 <건축미학>(서광사, 1985)과 <미학의 이해>(기문당, 1991)가 먼저 번역됐었지만, 내가 처음 구입한 책은 <현대철학소사>(현대미학사, 1995)였다. 데카르트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의 서양 철학사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서. 이어서 <크산티페의 대화>(민음사, 1999)와 <프뤼네의 향연>(민음사, 1999) 등이 번역됐지만, 내가 구한 건 <칸트>(시공사, 1999)나 <스피노자>(시공사, 2000) 같은 개설서였다. 근대철학이 주전공인 걸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대학에서는 주로 미학을 강의한 걸로 돼 있다(1944년생으로 대학에서는 은퇴했을 듯싶다).

 

 

아름다움(미)이란 주제의 개설서를 쓴 게 전혀 특이하지 않은 셈. 책은 바로 구입했지만 예상대로 좀 건조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는다. "나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이성적 본성에 근거한 실제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이며, 아름다움의 감각이 인간 세계를 형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특징이라면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나 진화론적 설명은 배제한 점. 미에 대한 순수한 철학적 설명만을 제공한다고 할까.

 

 

 

<아름다움>이 출간된 걸 계기로 스크러튼의 책을 검색해보다가 <신좌파의 사상가들>(한울, 2004)이나 공저인 <서양철학사>(이제이북스, 2004)처럼 이미 알고 있는 책들 외에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아우라, 2011)가 눈에 띄어 구입했다. <나는 마신다 고로 존재한다>가 원제인 책으로 '와인에 대한 한 철학자의 가이드'가 부제다. 저자는 와인에 대한 전문가적 조예를 갖고 있어서 와인 시음회에 초대받거나 신상품 와인 감식을 부탁받기도 한다고.

 

 

사실 아름다움이나 와인이나 모두 칸트식 취미 판단의 대상이므로 그의 와인 감식이 뚱딴지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철학자들에게 드문) 이론과 실천을 겸한 사례인 듯싶어서 인상적이다. 참고로 와인에 대한 철학서로는 스크러튼(스크루턴)의 책과 함께 티에리 타옹의 <와인의 철학>(개마고원, 2007)이 유일한 듯싶다.

 

명절 즈음에 종종 와인을 선물 받곤 하는데, 별로 즐기지 않는 터라 매번 부모님들께 선물로 드리곤 했다. 와인에 대한 철학서를 읽고 나면 구미가 좀 당길지도 모르겠다. 스크러튼에 따르면 좀 알아야지 즐길 수 있는 게 와인이라고 하니까. 일단 와인 보관 적정 온도부터 확인해봐야겠다...

 

13.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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