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책'으로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루, 2013)이 나왔다. 고려원판으로 나온 게 1994년이니까 얼추 20년만이다. 고려원판의 부제는 '여걸 원형(Archetype)과 관련된 신화 및 우화'였고. 이루판의 부제는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새 번역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한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1992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미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전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아마존 상위에 랭크돼 있고, 수많은 언론 및 명사들의 찬사와 독자들의 서평이 끊이지 않는 여성 심리학의 고전이다. 국내 굴지의 출판사 고려원에서 1994년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나 이듬해 출판사가 부도나면서 아쉽게도 절판되어 헌책방에서 정가의 몇 곱절로 팔리는 귀한 책이 되었다. 번역자인 손영미 교수가 원문과 꼼꼼히 대조하여 오류를 잡아내고, 세련되고 적확한 문장으로 손질하며 20년 세월의 때를 벗겨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이제 온전한 한국어 번역본이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우리 독자들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목수정의 독서에세이 <월경독서>(생각정원, 2013)에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에 대한 독후감을 읽을 수 있었는데, 찾아보니 이주향 교수의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북섬, 2007)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더불어, 톰 버틀러 보던은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흐름출판, 2005)에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자아실현의 명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만큼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란 뜻도 되겠다(꽤 오랜 시간 절판된 상태였던 우리와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럴 만한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 상당히 전복적이다. 간략한 소개만 읽어도 그 전복성을 어림해볼 수 있다.

 

융 심리학자인 저자는 여성의 집단무의식 안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어머니 늑대’ 원형을 발견하고 이를 전 세계 민담이나 설화, 동화에서 찾고 있다. 또 그 안에 숨어있는 의미와 상징을 새롭게 해석해 어머니 늑대가 여성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여성의 삶에 파탄은 어떻게 오는지, 또 어떻게 신성한 야성의 불로 이를 회복하는지 탁월한 통찰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 안에 있는 늑대 어머니 원형은 오랜 세월 약탈당하고 매장돼온 야성적 본능, 즉 여걸이라 지칭한 것으로, 야성을 잃어버린 여성을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와 같은 운명을 걸어왔다. 본래 여성과 늑대는 선천적으로 사랑이 넘치고 적응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 둘 모두는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호전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태고의 원시림과 함께 수세기 동안 약탈당하고 매장돼 왔다. 늑대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온 것처럼, 여성 또한 그 본능을 말살하고 정신 속의 밀림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고유의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는 늑대와 달리 여성은 오랫동안 여걸을 잃고 늘 희생양 같은 삶을 살아왔다. 여걸을 잃어버린 여성은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양보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며, 자신에게 해로운 애인과 직장을 선택하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늑대처럼 그것처럼 빛나는 직관은 힘을 잃었고, 사물을 분석하고 꿰뚫어보는 능력도 흐릿해졌으며, 타고난 예민한 감각도 둔해졌기 때문에 늘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잘못된 길에 들어서거나 내면에 큰 상처를 입은 여성들에게 이 책은 잊혀진 본능을 되찾는 길잡이이자 놀라운 심리 치유서가 될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 상담가들에게도 훌륭한 참고도서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 전후로 아직도 명절 증후군을 토로하는 여성들이 많은 우리 현실에서 '어머니 늑대'의 원형과 '야성적 본능'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라는 책의 메시지는 '훌륭한 참고도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짝은 '여걸들과 함께 달리다 기진할 남자들'일 테니까. 마음은 좀 간교해서 아내에겐 숨기고 딸아이에겐 읽히고픈 책이다...

 

13.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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