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읽은 한겨레 칼럼 중에 오길영 교수의 '크리틱'이 인상적이었다. '한국문학의 자리'라는 제목의 칼럼인데(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00656.html),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숙고를 적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두번째 숙고다.
세계문학공간에서 한국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세계문학과의 피상적 교류나 다른 나라 작가들과의 만남, 번역 활성화를 통해서는 높아지기 힘들다. 물론 그런 작업도 필요하지만 한국문학공간에 번역·수용되어 읽히는 세계문학과의 냉정한 비교와 상호교섭의 분석이 긴요하다. 요는 ‘나’를 남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얼마나 아는가이다. 비교컨대 한국영화가 활성화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가 실시간으로 관객에게 비교평가를 받으며, 그런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영화가 분투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한국문학 수용자의 수준은 이미 국제적이고 세계화되어 있다. 마치 유럽 축구와 미국 야구를 실시간으로 즐기듯이, 그들은 한국문학을 외국문학과 자연스럽게 견주면서 선택한다. 그렇다면 영화비평이 그렇듯이 ‘한국’문학으로 한정된 문학비평의 폭도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문학비평이 독자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는 흔하게 접하는데, 정작 그 원인에 대해선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흔하게는 '주례사 비평'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오길영 교수의 문제의식은 한국의 독자(수용자)의 수준이 이미 세계화돼 있어서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하는데 반해 문학비평은 한국문학에만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게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얘기다. 다시 계간지 시즌이 돼 가을호들이 나오고 있지만, 외국문학 작가나 작품을 일부 조명하긴 해도, 집중적으로 다루진 않는 게 한국 문단이나 잡지의 불문율이다(과거 <외국문학>이란 계간지가 따로 나오긴 했었다). 똑같이 영화시장, 문학시장이란 말을 쓰지만, 그 시장에서 비평의 기능은 상당히 다르게 작동한다고 할까.
최근에 나온 젊은 비평가들의 평론집으로 조연정의 <만짐의 시간>(문학동네, 2013)과 양윤의의 <포즈와 프러포즈>(문학동네, 2013)를 오늘 구입했는데, 목차를 보니 대개의 평론집과 마찬가지로 외국문학에 대한 비평은 한편도 들어 있지 않다. 국문학 전공자들의 평론집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제는 분위기를 좀 바꿔야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비평가가 한국영화만을 비평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건만, 문학비평가가 외국문학도 다룬다고 하면 왜 이상하게 여겨질까. 관행의 차이 말고 어떤 설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영화비평이 그렇듯이 '한국'문학으로 한정된 문학비평의 폭도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란 필자의 제안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 김현 선생의 평론집에선 불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도 곧잘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불문학 전공자여서 가능했던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러한 관심을 '개인기'로만 돌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문학비평의 빈곤과 위축을 가져오지 않나 싶다. 외국문학이 허다하게 소개되고, 세계문학전집의 목록도 꽤 늘어난 상태이지만, 어떤 게 좋은 작품이고 무엇이 이슈가 될 만한지 짚어주는 비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정도 역할도 현재의 문학비평에 기대할 수 없다면, 누구를 위한 문학비평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물론 한국의 문학비평은 작가나 동료 비평가를 위한 글쓰기가 아닌가란 심증은 갖고 있다. 독자는 그 관심에서 부차적이다). 문학비평의 폭이 넒어지면서 그 역할도 확대되길 기대한다...
13. 0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