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무 때문에 토요일 오전부터 학교에 나왔다. 귀국 이후엔 처음이다. 조용할 줄 알았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북적거린다(대개 나와 같은 종류의 용무이다). 한 편의 프로그램성 글을 작성하는 것이 오늘의 할일인데, 아직 동료들의 글이 도착하지 않은 걸 핑계로 잠시 쉬고 있다. 이 잡는 기분으로 몇 자 적는다. 오는 길에 두 종의 토요일자 신문에서 북리뷰도 읽은 티를 낼 겸.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가 출간예정이라는 건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바 있는데, 책은 지난주에 서점에 깔렸고 나는 어제 출판사측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았다. 옮긴이 서문에 내 이름이 언급돼 있는데, 러시아어 인명과 작품명을 교정한 인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연은 전적으로 우연에 기인한다. 모스크바에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던 중 우연히 역자가 운영하는 벤야민 카페에 '모스크바 일기'가 번역/소개돼 있다는 내용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되었던 것. 카페에 올라와 있던 초역에는 러시아어 인명/지명 등이 잘못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잠자는 숲속의 벤야민'이란 통신문을 통해 지적한바 있는데, 눈 밝은 출판사측에서 연락을 취해 왔다. 귀국 준비 때문에 별로 경황이 없었지만, 나는 보내준 '일기' 원고파일의 절반 가량을 훑어보고 귀국했다.

 

교정은 흔쾌히 맡기로 했지만, 귀국 이후에 이런저런 잡일과 병치레로 맡은 일을 만족할 만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책이 현재의 깔끔한 모양새로 나온 것은 출판사측의 '전문가적' 편집/교정 덕분이다. (아마도 문교부의 '외래어 표기안'대로) 러시아어의 무성음화를 우리말 표기에 반영한 것 정도가 나로선 약간 낯설게 느껴지는데('메이에르홀드(Meyerhold)'를 '메이에르홀트'로 표기하는 식), 그러한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헷갈릴 건 없다고 본다. 61쪽에서 펠트로 만든 장화 '발란키스'도 내가 갖고 있는 영어본(1986년)과 러시아어본(1997년)에는 '발렌키'로 돼 있는데, 이게 선택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 표지에도 사진으로 들어가 있는 '바실리' 성당을 '바실리우스' 성당이라고 (라틴식으로) 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경우는 러시아쪽 표기를 살려주는 게 낫지 않나 싶다(물론 우리말 표기가 러시아쪽 표기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러시아어 '시비리'는 우리말로 '시베리아'라고 표기된다. 이미 굳어져 버렸기 때문에 고치지 않는 것).

 

잘 읽히는 책이지만, 가끔 미심쩍다고 생각되는 대목들이 없지는 않은바, 내가 읽은 범위내에서 두어 가지를 지적한다(나는 오는 길에 63쪽까지 읽었다). 37쪽에서, 독일과 러시아 신문 기사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는 대목인데, "500-600줄 사이의 기사들은 예외없이 그렇다"는 "여기서는(=러시아에서는) 500-600줄 짜리 기사가 드물지 않다"란 내용이다. 독일 신문들은 짤막하게 '결론'을 제시하지만, 러시아 신문들은 자료를 폭넓게 제시한다는 것(이건 요즘도 그런 편이다). 60쪽에서, 구걸을 다루고 있는 대목인데, "거리 구석구석, 특히 외국인들이 좌판을 벌이고 있는 구역"은 "거리 곳곳에, 특히 외국인들의 비즈니스 구역" 정도의 뜻이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사업가들)이 적선에 더 관대하기 때문에 걸인들이 더 모인다는 내용일 테니까. 좌판을 벌인다는 건, (비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우리의 경우 노점상을 뜻하는데, 1926년에 외국인들이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노점상을 할 일은 없어 보인다.

 

61쪽의 '어린 노숙자' 사진은 영어본에 따르면, 지가 베르토프의 뉴스필름에서 따온 것이다(주석의 경우 영어본이 더 자세한 경우가 많았다). 이 사진은 물론(!) 러시아어본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62쪽,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비실제적 환상"에서 '환상'은 영어나 러시아어본에서모두 복수형이고 fantasies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판타지'이다('환상'은 단수형으로만 쓴다). 문맥상 '환상'과는 약간 다른 의미여야 할 듯하다. 그리고 63쪽, 불가코프의 <투르빈가의 나날들> 공연을 보러완 청중(=관객)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대목인데, "여기엔 코뮤니스트들은 거의 하나도 없었고 검정 혹은 푸른 색 블라우스도 눈에 띄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흔히 여성용 옷을 지칭하는 '블라우스'는 남성용 잠바나 제복 정도로 바뀌어야 할 듯싶다. 영어본은 tunic이라고 옮기고 있고, 러시아어로는 '블루즈'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블루즈'는 여성용 블라우스와 함께 남성용 잠바도 뜻한다. 내 생각에 검정 잠바, 파란 잠바는 밀리찌야(경찰) 등을 가리키는 환유가 아닌가 싶다...

 

 

 

 

 

 

 

 

 

 

그건 그렇고, 책 얘기나 (시간관계상) 얼른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제일 먼저 꼽을 책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이다. 북리뷰란들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므로 별다른 얘기를 덧붙이지 않겠다.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작가 사폰은 스페인 출신으로 그의 이 작품은 20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대형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도대체 스페인 사람들은 무슨 소설을 읽는가라는 주변적인 관심만 가지고도 읽어볼 만하다고 본다. 대중적 평가뿐만 아니라 문학성에 있어서도 여러 사람이 보증을 서고 있는 작품. 문학과지성사가 파스칼 키냐르에 이어서 새롭게 내세우는 '간판'이 아닌가 싶은데, 한국 작가들의 소설만 가지고는 더이상 '영업'이 안된다는 인식이 이런 소설들의 번역출판에는 전제돼 있다. 그래서 '추리소설 결정판'(문화일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달지만은 않다.

 

 

 

 

 

 

 

 

 

두번째는 역사서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 이 또한 한겨레에서 크게 다루고 있으므로 군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이 책의 원제는 <칭키스 칸과 근대 세계의 형성>인데, 제목이 말해주는 바대로, 칭기스 칸의 '보편적' 제국건설이 '근대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러니까 '그리스=세계'나 '중국=세계'의 레벨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세계'라는 건 세계사의 이 유일무이한 주역이 이루어놓은 결과이다. 더불어, 그의 몽고 제국은 '러시아'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몽고(타타르)에 대한 항전과 대타의식에서 루시(러시아의 고어명)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방면의 역사서가 드문 상황이기에 특별히 이 자리에 이 책을 올려놓는다. 저자인 잭 웨더포드는 인류학자로서 <돈의 역사와 비밀 그 은밀한 유혹>(원제는 '화폐의 역사', 청양, 2001)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류학도 상당히 박식한 학문, 박식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세번째 책은 역사학에 관한 책으로 <굿바이 E. H. 카>(푸른역사)이다. 책은 1961년에 나온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40주년(2001년) 기념심포지엄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것이다(한겨레의 고명섭 기자는 이 책이 1982년에 죽은 카의 20주기를 맞이하여 개최된 심포의 산물이라고 적는데, 착오인 듯싶다. 땡겨서 하지 않는 한, 20주기는 2002년이어야 하므로.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가 1962년에 나온 걸로 적고 있다). 대학가의 필독서였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란 정의로 잘 알려져 있는 책이고, 국내에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준비하던(카는 서문만을 써넣고 죽었다) 2판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1997)도 번역돼 있다.

 

 

 

 

 

 

 

 

 

 

40년, 강산도 여러 번 바뀔 만한 세월인 만큼 당연히 역사학의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을 법하다. 책은 그러한 지형의 변화를 일람해 보는 데 요긴할 듯하다. 그간에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건 문화사, 미시사인데, 이번 주 한겨레의 '아깝다! 이 책'란에는대표적인 미시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길, 2004)가 다시 소개되고 있다. 출판사로선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든 책인데, 생각만큼 안 나가고 있다는 것. 지난주 자프란스키의 <니체>(문예출판사)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렇게 나온 책들은 독자들이 좀 사줘야 한다. 독자가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책들도 좋은 독자들을 외면하고 돈맛이나 챙기기 마련이기에. 언젠가 모스크바 통신에서 언급한 듯한데, 작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긴즈부르그 선집은 역사분야 베스트(2권)의 하나였다. 참고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타의식에서 씌어진 책이 케이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혜안, 1999)이다. 원제는 'Rethinking history'.

 

 

 

 

 

 

 

 

 

네번째 책은 김용준 고대 명예교수의 <과학과 종교 사이>(돌베게). 화학 전공의 과학자로서 그리고 모태신앙을 가진 종교인으로서 자신의 40년 학문적 삶 혹은 여정을 총결산하고 있는 이 책은 '과학인 김용준의 연구노트'라는 부제를 갖고 있으며, 계간 <과학사상>에 10년간 연재한 것을 모은 것이다. 나는 부분적으로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그의 종교 정향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그의 학문적 열정과 여정에는 배울 만한 대목이 많다. 일독해볼 만한 책.

 

 

 

 

 

 

 

 

 

이 책은 한겨레와 동아일보 서평에서 모두 크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동아일보의 시작은 이렇다: "1900년 태생으로 말년까지도 논문을 발표하다 2002년 별세한 가다머를 생각하면 나는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환갑노인이 되도록 무명의 학자로 칩거해 있다가 나이 60에 '진리와 방법'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내놓음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학자로 군림한 그 신실함은 내게 너무나도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해서 불현듯 가다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는데, 사실 어제는 러시아에서 온 책들 가운데 <진리와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500루블(2만원) 주고 산 책. 영어본 <진리와 방법>의 경우 개역본까지 몇 년전에 나왔건만 한국어본은 1/3 정도만 나온 채 소식이 없다. 이런 게 한국의 학문과 교양의 평균적 수준이 난장이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 있는 그럴 듯한 이유이다.

 

딱히 더 꼽고 싶은 책이 없어서 다섯번째 책은 근간으로 나올 책을 기록해둔다. 도서관에 책을 주문하기 위해서 아마존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지젝 선집 과 그의 또다른 책 이 올해 안에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다. 출판사는 Verso가 아니라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이며, 두 권 모두 350쪽 안팎의 두툼한 분량이다. 짐작컨대, 아무도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는 없다! 지젝-오타쿠들의 걸음이 더 빨라져야겠다...

 

05. 4. 2.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니다 2005-04-06 15:27   좋아요 0 | URL
옮긴이 서문에 언급된 이름은....'로쟈'더군요.
로쟈가 박노자의 다른 필명이라....ㅎㅎㅎ, 귀여운 상상력
올해 안에 로쟈님의 전공관련 연구서적이 출간될건가요?

로쟈 2005-04-06 16:32   좋아요 0 | URL
어떻게 아셨나요?! 아마도 학위논문이 출간될 듯한데, 워낙에 소량을 찍는 거라 구경하시기는 힘들 듯합니다.^^

주니다 2005-04-07 17:2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페이퍼에 힌트가 있었던거죠 뭐.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나저나 그 책이 시중에 깔리는게 아닌가봐요? 섭섭하네요.
어디가면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