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한 주가 끝나고(오늘도 아직 일거리가 남아 있지만) 내일은 다시 강의차 지방에 내려간다. 매주 반복되는 일정이다. 주말에도 밀린 일이 잔뜩인데, 이번주엔 정리해야 할 책도 많다. 평소의 1.5-2배 정도 되는 듯싶다. 이런저런 강의준비로 읽어야 할 책이 잔뜩인데, 조만간 책이사를 해야 하기에 서재와 거실은 이사 모드로 진입하고 있다. 대체 휴가는 언제 가야 한단 말인가,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실상 내가 원하는 휴가는 아무 일정 없이 며칠간 휴양지에서 책을 읽는 것 정도지만).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푸념이 나올 때마다 입막음용으로 쓸 만한 책들도 있는 걸 보면. 휴가에 대한 푸념이 나올 때 읽을 책은 물론 여행서다. 프랑스인 저자 둘이 쓴 <여행정신>(책세상, 2013)은 어떤가. '현명한 여행자를 위한 삐딱한 안내서'가 부제다. 제목은 <여행정신>이지만, 사전식 구성을 하고 있기에 <여행사전>이나 <여행의 언어>란 제목이 붙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책이다. 간명한 소개는 이렇다.

여행지나 여정에 따라 감상을 써내려간 여행 에세이가 아닌,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여행과 관련한 항목들을 사전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여행 자체를 사유하고 있는 색다른 여행서. 여행 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사진 한 장 없다. 여행을 직시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여행의 충격을 가라앉히는 행위나 어딘가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료증 같은 사진 더미를 거부하는 이 책은 A부터 Z까지 250개의 단어를 유려한 글로 풀어내며 여행의 메마르지 않는 가능성과 매력을 상상하게 한다.

나 같은 방콕 여행자들에겐 잘 맞는 책. 작년에 나온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2012)에 견줄 수 있을까. 찾아보니 원서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군.

 

 

여름 여행이라면 갈증을 해소해줄 시원한 음료에 대한 생각도 빠질 수 없는데, <여행정신>에서는 그리스산 포도주 '레치나'를 언급한다. "가장 오래된 양조법으로 만드는 그리스 음료"로 "오늘날의 유명한 최상급 와인들이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술을 맛보면,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맛볼 때마다 매번 기억 속에서 밀려오는 감각의 산사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저자들은 적는다. 또 이런 건 찾아본다. 

 

 

 

흠, 여름밤에 시원하게 한 잔 마셔도 좋겠다. 그러고 보니 여행지의 술을 다룬 책도 나와 있다. 오지 여행PD 탁재형의 <스피릿 로드>(시공사, 2013). 부제가 '여행의 순간을 황홀하게 만드는 한 잔의 술'이다. 이 책에선 레치나가 아니라 치구디아를 조르바의 나라 그리스의 술로 꼽는다. 저자의 결론은 이런 것이군. "세상은 넓고 술은 많다."

 

여하튼 무더위에 아직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선 여행의 '에스프리'나 '스피릿'이 좀 필요하다. 책으로라도 단련하다 보면 언젠가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떼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딘가를 한창 걷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 마주친다면 암호는 '레치나'로 해도 좋겠다...

 

13.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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