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3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지방을 오가며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남해의봄날, 2013)을 읽고 적었다. 출판사 남해의봄날은 경남 통영에 위치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이제껏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작은 출판사이지만, 신선한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도 기획의 힘이 돋보이는 책이다.
주간경향(13. 07. 02) 서울을 탈출해서 어떻게 살까
지방 강연을 가면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으니 나름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대열에 합류한다는 기분도 냈다. ‘3040 지식노동자들의 피로도시 탈출’이라는 부제도 나와 동떨어진 게 아니니 필독할 만도 했다.
알다시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피로도시’ 서울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어서는 아니다. 서울을 찾거나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대개 일자리 때문이다. 서울을 떠나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막막함이나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 게 다반사다.
그래도 그렇게 주저앉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홉 명의 지식노동자가 선택하고 실행한 ‘서울 탈출기’를 참고해보아도 좋겠다. 다니던 직장이 갑작스레 제주도로 옮겨가는 바람에 제주에 정착하게 된 인터넷 포털서비스 기획자에서부터, 귀향한 예술공간 대표, 지방대 교수, 서울에서의 과로로 건강을 잃고 일 년쯤 안식년을 갖기 위해 내려간 남해안 통영에 아예 눌러앉아 출판사까지 차린 출판사 대표까지(바로 이 책을 펴낸 남해의봄날 대표다) 다양한 사례가 본보기다.
다들 단단한 결심을 하고 오랜 준비 끝에 서울을 떠난 건 아니다. 제주도에 카페를 차린 이담씨는 원래 서울 근교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던 직장인이었다. 10여년 동안 컴퓨터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하루 4시간가량을 출퇴근 길 위에서 허비했다. 그러다 거대도시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 달쯤만 쉴 생각으로 제주에 내려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먹고 자고 쉬는 동안 제주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고 그 매력에 빠지면서 급기야는 서울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의료보험료가 체납될 정도로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도시를 떠난 삶의 여유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은 직접 볶는 커피와 오무라이스를 주 메뉴로 하는 카페를 운영한다. “내게 필요한 건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하는 자급자족의 삶. 그러기 위해 마음의 여유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도로에서 서너 시간을 버리는 도시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삶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발견이자 자부심이다.
부산에서 로큰롤 스타를 꿈꾸던 가수 사이의 인생행로는 규격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실례다. 부산에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상경한 그는 국립극장의 기관실에서 일하다가 출판사 편집자 생활도 하고, 길거리 밴드를 만들어 떠돌기도 했다. 그러다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아내와 함께 경남 산청의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가 생태근본주의적 생활도 했다. 그것은 ‘대단한 삶’이었지만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다시 충남 괴산으로 이사한 그는 ‘유기농 펑크 포크’를 창시하고 지역 음악축제를 개최하는 등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면서 살고 있다. 통장에 잔고는 별로 없더라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가고 싶은 곳에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산다. 얼핏 별스런 삶처럼 보이지만, 사이가 만든 ‘괴산페스티벌’은 해마다 수백 명이 참여해 같이 놀고 즐기는 성공적인 동네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경우라고 할까.
미리 가방에 넣었지만 사실 내가 책을 읽은 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KTX 객차 안에서였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읽는 기분은 묘했다.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압력을 다시 확인하게 되지만 한편으론 서울에서 서너 시간만 벗어나도 뭔가 다른 삶이 아직 가능하다는 사실에 위안도 받는다. 떠나는 것이 가능하다면 최악은 아닌지도 모른다.
13.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