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심산, 2013)다. 제목만으로는 감을 잡기 어려운데, 부제는 '빅히스토리'. 부제라기보다는 분야를 지시한다고 해야 할까(원서의 부제는 '빅히스토리 입문'이다). 말그대로 빅히스토리 분야의 책('거대사'나 '지구사'란 용어도 쓰인다). 빅뱅 이후의 역사를 통째로 다루는 게 빅히스토리다.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옥스포드대학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학자인데, 현재는 호수 매쿼리대학에 재직하면서 '빅 히스토리'란 용어를 처음 고안해내 널리 알렸다고 한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서해문집, 2009)를 염두에 둔 말이겠다. 국내엔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웅진지식하우스, 2013; 프레시안북, 2009)도 이 분야의 입문서로 소개돼 있다. 아래는 <시간의 지도>와 <빅히스토리>의 원서(이 두 권의 번역서는 같은 역자가 옮겼다).
빅히스토리와 관련해서는 이화여대의 '지구사연구소'에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데(빌 게이츠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간의 지도> 역시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하나로 나온 것이다.
<시간의 지도>에는 저명한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추천사가 붙어 있는데, "이 책은 역사적으로나 지적으로 대작이라고 불릴 만한 책으로, 명백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해박하고 우아하며 과감하고 간결하다"고 호평하고 있다. 더불어 러시아사가로서 저자의 역량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도 관심을 갖게 된다.
예컨대 <빵과 소금: 러시아 식음료의 사회경제사>(1985)나 <살아있는 물: 보드카와 농노 해방 전야의 러시아 사회>(1990), <권력과 특권: 19세기와 20세기의 러시아와 소련>(1986), <러시아, 중앙아시아, 몽골의 역사>(1998) 등이다(마지막 책의 2권은 올해 나올 예정이다). 번역되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원서라도 찾아볼 참이다. 아무튼 러시아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한데 묶어서 다루는 거대사 기획을 동시에 밀고나가는 저자의 시야와 뚝심이 믿음직스럽다.
<시간의 역사> 뒷갈피 목록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수량화혁명: 유렵 패권을 가져온 세계관의 탄생>(심산, 2005)도 들어 있어서 역사가 앨프리드 크로스비도 떠올리게 됐는데, 국내엔 현재 다섯 권의 책이 번역돼 있다. 그 중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서해문집, 2010)은 <시간의 지도>와 마찬가지로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하나다. 거기에 '에너지를 향한 끝없는 인간 욕망의 역사'를 다룬 <태양의 아이들>(세종서적, 2009)도 소개됐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
그렇게 절판된 책으로는 가장 먼저 소개됐던 <생태제국주의>(지식의풍경, 2000)도 있다. 재출간을 고대했지만(책이 나왔을 때는 좀 비싸다는 생각에 구입을 미뤘었다) 소식이 없다. 헌책이라도 구해볼까 했지만 2004년에 원서 2판이 나온 게 있어서 미루고 있다. 번역본도 개정판으로 나오면 좋겠다. 언젠가 <생태제국주의>를 구할 수 없어서 (꿩 대신 닭이라고)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지식의숲, 2006)를 구한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닭이 꿩을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도 읽어줄 사람이 있을 때 나와주는 게 좋다. 독자라고 해서 마냥 기다려주진 않는다...
13. 0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