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18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클래식 이야기'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인 편에 속하지만, 클래식 전문가나 애호가들의 책은 그것대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해주는 클래식 감상법은 간명한데, 반복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책&(13년 5월호) 음악이 흐르는 책

 

5월은 가정의 달이면서 ‘계절의 여왕’이기도 하다. 싱그러운 계절을 만끽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을 몇 권 골랐다. 전문가 수준의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음악의 감동은 누구에게나 손을 내민다. 하지만 막상 그 손을 맞잡고 환희에 도달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5월에는 클래식과의 속 깊은 데이트를 주선해주는 책들을 통해서 음악과의 만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보아도 좋겠다.


클래식의 문외한이라도 거리낌 없이 손에 들 만한 책은 조윤범의 <나는 왜 감동하는가>(문학동네, 2013)이다. 현악사중주단의 리더이면서 칼럼니스트이고 음악FM방송의 DJ이기도 한 저자가 클래식 안과 밖의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책으로도 묶인 <조윤범의 파워클래식1,2> 강의로 유명한 그는 음악의 감동이 자연스러운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감동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표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지 도달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가들은 주변에 많이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음반을 감상하거나 연주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이해와 공감이고, 또한 이를 표현하려는 노력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방안에다 여러 개의 실을 빨랫줄처럼 매달고 악기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실에 붙여서 자기만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레코드판으로 듣더라도 마치 음악회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보에와 플룻이 나오면 가운데를 쳐다봤고, 바이올린이 나오면 왼쪽 앞을, 첼로가 나오면 오른쪽 앞을 쳐다봤다.” 물론 그렇게 듣는 것이 습관이 되자 그는 눈을 감고 들어도 악기들의 위치를 상상할 수 있었다.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며 지금 그 소리들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있는가를 느끼는 것은 그런 반복적인 청음의 결과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점에서 클래식도 예외는 아니다.


대중과 가장 친숙한 지휘자이자 음악 해설가인 금난새의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아트북스, 2012)은 한국인에게 클래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불멸의 교향곡’ 11작품에 대한 해설서이다. ‘교향곡이란 무엇인가’란 친절한 소개에서부터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을 거쳐 말러의 교향곡 1번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대한 해설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교향곡에는 “작곡가의 음악적 정서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상, 감정, 나아가 문학적인 내용 등 모든 세계관이 담겨” 있다. 교향곡이 ‘소리로 빚은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자는 그 교향곡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하면서 미더운 가이드를 자임한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아니라고 해서, 곧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클래식 애호가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시절부터 클래식 음반을 쫓아다니다 결국 일간지의 음악담당 기자가 된 문학수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에는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조예가 여실히 담겨 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는가란 물음에 답하여, “이 곡 저 곡 많이 들으려고 하지 말고, 같은 곡을 자꾸 반복해 들으세요.”라고 조언한다. 반복적으로 들음으로써 곡의 흐름에 익숙해지고, 음의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올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음악이 주는 감흥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물론 바쁜 일상에서 꽤 긴 시간의 클래식을 반복해서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면 음악은 결코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믿음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저자의 ‘클래식 읽기’에는 빈번한 술자리를 잊고 드라마 시청과 주말 등산을 포기하면서 음악에 바친 그의 시간이 집약돼 있다. 음악의 감동이 그런 ‘희생’을 보상해주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 시절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끈 대표적인 작품이 ‘혁명’이란 제목이 붙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라는 점이다. 금난새 역시 특별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가끔 쇼스타코비치가 저를 위해 작품을 썼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언급한다.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런 감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클래식 연주를 비교해서 듣는 것만큼 재미있다. 

 

 


한편 아무리 감동을 들먹여도 진지한 클래식 애호가가 되는 일이 부담스런 독자도 있을 법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클래식을 살짝 비껴가고자 한다면 애초에 장일범, 정준호 등 클래식 멘토 7인이 쓴 <호모 클라시쿠스>(생각정원, 2012)를 읽고 방향을 틀어도 좋겠다. 클래식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거꾸로 빠져나오는 출구이기도 할 테니까. 7명의 사례를 읽다가 클래식 애호가의 기질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면 하는 수 없다. 류준하의 <내 삶의 변주곡 클래식>(현암사, 2012)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음악의 기쁨을 아는 젊은 클래식 애호가를 위한’ 책이다. 반면에 클래식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된다면 이민희의 <왜 그 이야기는 음악이 되었을까>(팜파스, 2013)도 적당하다. 스물 네 곡의 음악이야기를 늦은 밤 라디오방송에서처럼 편안하게 들려준다. 헨델과 모차르트의 곡 이야기와 함께 자우림과 이상은의 노래 이야기도 담겨 있다.

 

13.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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