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강의차 읽은 게 계기가 돼 쑤퉁의 <쌀>(아고라, 2007)을 다뤘다. 얘깃거리가 많은 소설이지만, 제한된 분량에 맞추느라 오전 시간을 거의 잡아먹은 글이다. 쑤퉁의 작품은 여럿 소개돼 있으며 대부분 구입한 상태인데, 장편 중에서는 <나, 제왕의 생애>(아고라, 2007)과 <뱀이 어떻게 날 수 있지>(문학동네, 2008) 등을 먼저 읽어보려고 한다. 한편, <쌀>은 <대홍기 쌀집>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는데(지나치게 선정적이란 이유로 7년간 상영 금지됐었다고), 어디서 구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13. 05. 11) 지옥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남는 법

 

세상이 전쟁과 굶주림으로 어지럽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를 묻는 게 먼저인지도 모른다. 중국 작가 쑤퉁의 소설 <쌀>(아고라·2007)의 주인공 우룽은 난세를 버텨내지 못하고 그냥 황천길로 떠나는 건 억울할뿐더러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룽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살아 있는 것, 둘째, 사람답게 사는 것. 일단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고향 펑양수에 홍수가 나자 우룽은 석탄운송 열차에 몸을 싣고 낯선 도시로 온다. 사지(死地)가 된 고향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도시는 비정했고 사람들은 속악했다. 부두 건달패의 우두머리 아바오는 먹을 것을 구걸하는 우룽의 손을 발로 짓이기며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음식을 주겠다고 조롱한다. 고아인 우룽은 고향에서도 개보다 나을 게 없는 존재였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 건달들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신이 정말 개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면도 있다. 쌀 냄새에 이끌려 와장가의 대홍기 쌀집에 찾아간 우룽은 거렁뱅이 취급을 받자 밥그릇을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전부는 아니다. 그에겐 어엿한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무보수로 일하게 된 쌀집 주인 펑 사장과 목욕탕에 가서 그의 등을 밀다가도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인데 왜 나만 항상 당신의 등을 밀어야 하는 거지?’라고 의문을 품는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든 차별과 모욕을 마치 장부에 기입하듯 가슴에 새겨두었다가 철저하게 복수한다.

 

 

쌀집의 큰딸 쯔윈이 실력가 뤼 대감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도 그 하수인인 아바오와 정을 통하는 걸 알게 된 우룽은 뤼 대감에게 밀고의 편지를 보내 아바오를 죽게 만든다. 쯔윈이 아바오의 아이인지 뤼 대감의 아이인지 불확실한 아이를 임신하자 펑 사장은 우룽을 일단 데릴사위로 삼았다 제거하려고 한다. 하지만 명줄이 쇠심줄 같은 우룽은 악착같이 살아남아, 아들을 낳고 뤼 대감 댁으로 들어간 쯔윈 대신에 그 동생 치윈과 결혼하여 대홍기 쌀집의 주인이 된다. 쌀자루를 들고나가 부두 조직의 우두머리까지 된 장년의 우룽은 뤼 대감도 암살하고 마침내 도시의 실력자가 돼 꿈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자신을 살인도 서슴지 않는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 대가로 얻은 것이며, 성병으로 썩어가는 그의 육신처럼 무상하다.

 

모두가 복수를 벼르는 악인임에도 우룽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의 교훈 때문이지 싶다. 은전 두 닢을 준다고 하니까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청년의 손을 짓밟으며 우룽은 처음 도시에 왔을 때 아바오에게 당한 치욕을 상기한다. “복수심과 증오심이야말로 우리가 사람 구실을 하게 하는 밑천”이라는 게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청년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우룽의 교훈이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객차에 쌀을 가득 싣고 고향으로 떠나는 우룽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애초에 우룽의 꿈은 금의환향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이 개가 아니라 어엿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는 것이다. 생니를 다 뽑고 이빨 전부를 금니로 해 넣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쑤퉁의 <쌀>은 어엿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 증오와 복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의 지옥도를 보여준다.

 

13.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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